미국 해군에는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이름을 붙인 함정이 지금까지 14척이나 된다. 1775년 독립전쟁 때 워싱턴이 직접 명명한 첫 '워싱턴함' 등 4척은 나포, 격침되는 비운을 겪었으나 후속 함정들은 미국의 해양 제패를 이끌었다.
2차 대전에서 활약한 전함 워싱턴(BB-56)과 최초의 탄도미사일핵잠수함 조지 워싱턴(SSBN-598)에 이어, 내년에 다시 같은 이름의 최신 항공모함(CVN-33)이 일본 요코스카에 배치된다. 미 해군은 과거 주력 항모에 주요 해전 명칭을 붙였으나 최근에는 미국과 해군 역사에 중요한 인물을 선호한다.
■ 니미츠급 항모의 체스터 니미츠는 2차 대전 때 태평양함대사령관을 지낸 해군 영웅으로, 링컨 루스벨트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레이건 등 역대 대통령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잠수함 근무경력이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은 핵잠수함에 이름을 남겼다.
원래 핵잠수함은 오하이오 로스앤젤레스 버지니아 등의 지명을 붙인다. 순양함과 상륙전함은 타이콘데로가 게티스버그 초신(長津) 이와지마 등 유명한 격전지명을 많이 쓴다. 구축함은 알레이 버크 등 뛰어난 해군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흔하다.
■ 우리 해군은 과거 주력 구축함과 호위함은 서울 경기 등 대도시와 도(道), 초계함은 천안 성남 등 중소도시, 소해함은 영동 금산 등 군(郡), 상륙함은 월미 거문 향로봉 등 섬이나 산봉우리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잠수함 시대를 열면서 최무선 장보고 등 역사상 인물과 손원일 제독 등 해군 인물을 기려 함정에 붙이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한국형 구축함은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이순신 문무대왕 왕건 강감찬 등으로, 최신 이지스 구축함은 세종대왕함으로 명명했다. 28일 진수하는 차기고속정 1번함도 윤영하함으로 정했다.
■ 해군은 당초 한국전쟁 첫날 부산 상륙을 노리던 북한 함정을 격침시킨 백두산호 함장 최용남 중령의 이름을 붙일 것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2년 서해 교전 때 전사한 참수리 고속정 정장 윤영하 소령을 기리는 함정명을 선택했다. 참수리보다 훨씬 크고 강한 차기고속정 사업의 상징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바다를 지키다 목숨 바친 장병을 기리자면 1967년 동해에서 북한 해안포에 격침된 초계함 당포함이 먼저일 듯하나, 아까운 희생을 막고 서해 평화를 지키려는 의지로 보고 싶다. 그게 곧 서해 교전의 교훈을 옳게 되새기는 길일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