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된 자동차회사 노조가 FTA반대 파업을 한다고?”
15일 오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전에 없이 싸늘한 분위기였다. 금속노조가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넘어 ‘민중의 생존’이라는 대의로 계획한 파업(25~28일)이 임박했는데도 여느 때 같으면 경쟁하듯 나붙었을 현장조직의 대자보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근로자들의 얼굴도 밝지 않았다. 올해 초 시무식 폭력사태로 빚어진 장기 파업과 고소ㆍ고발 사태로 어느 때보다 차가운 울산시민의 반응과 따가운 여론의 눈총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담소를 나누는 근로자들에게 심정을 물어봤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더. 산별노조로 들어간 거는 아무래도 악수(惡手)같아요. 이래저래 산별의 지시에 휘둘리다 보면 회사와 종업원들 이미지만 깎이는 게 아닙니꺼. 아이들과 TV뉴스 보기도 민망합니더.” 3공장 근로자(44)의 푸념이다.
다른 한 근로자(41)는 “고객을 직접 만나는 판매와 정비쪽 사람들은 더 죽을 지경일 텐데 집행부가 이런 고충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노총의 핵심인 20년 역사의 현대차 노조가 산별 눈치를 보며 이렇게 무기력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한심하다”며 “‘대의’를 위한다면서 찬반 투표를 못 부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노조 집행부도 이번 파업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대차와 기아차 등 완성차 4개사 노조위원장은 13일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은 절차상 문제와 정치파업에 대한 현장 근로자들의 불만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 장규호 공보부장은 “근로자들의 속내를 모르는 게 아니지만 이제 파업 결정은 금속노조가 한다”면서 “조합원 찬반투표로 산별에 가입한 만큼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울산지역 상공계와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울산상의 박종근 상근부회장은 “파업에 반대하는 현대차 노조가 상부(금속노조) 지시에 끌려가는 구도가 문제”라며 “하지만 국가경제에 책임이 막중한 대기업 노조가 산별노조라는 이유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FTA 타결로 생긴 약진의 기회를 파업으로 망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울산상의는 14일 저녁 긴급 회장단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으며, 다음주 중 금속노조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파업반대 의견이 넘쳤다. “산별로 가는 것은 민노총의 전위대 역할만 하는 것”(ID:조합원), “(찬반)투표 철회는 조합원의 지탄을 받아야 할 꼼수”(반전성공), “우리의 파업으로 죄없는 협력업체 조합원 생계에 영향이 갈 수도”(아이럽HMC), “원치 않는 정치파업에 앞장선다면 현대차 지부는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영감) 등 정치파업을 비판하는 글들이 잇따랐다.
현대차 노진석 홍보이사는 “명분이 없는 정치파업에 참여할 경우 성과금 미지급으로 임금이 줄어들고, 부정적 여론에 따라 열심히 만든 차 판매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근로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목상균 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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