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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거꾸로 예술 바로 디자인] 우리가 자랑할 만한 문화적 인터페이스 과연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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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거꾸로 예술 바로 디자인] 우리가 자랑할 만한 문화적 인터페이스 과연 있는지

입력
2007.06.1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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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스징산(石景山) 유원지가 국제적인 화제를 모았다. “디즈니랜드는 너무 머니 스징산 유원지에 놀러가자”는 구호를 내건 놀이공원의 모습이 영락없는 ‘짝퉁 디즈니랜드’였기 때문이다. 디즈니사는 즉각 저작권 침해 소송을 경고했고 화들짝 놀란 유원지측은 미키마우스를 모방한 캐릭터 조형물들을 철거하는 촌극을 빚었다.

하지만,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나는 그저 웃으며 뉴스를 보기 어려웠다. 머릿속에선 거의 자동적으로 간단한 반문이 이어졌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놀이 공원은 어느 정도 월트 디즈니의 창안에 빚지고 있는 것 아닌가? (사실 롯데월드의 너구리 캐릭터도 어설픈 디즈니 풍이잖아!) 오늘날 우리 아시아인이 누리고 있는 물질 문화의 인터페이스 가운데, 아시아에서 창안된 것은 과연 몇 가지나 되는가?

증기기관부터 타자기, 안전 자전거를 거쳐 비행기, 초기 컴퓨터, 디스코 클럽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중요성을 띠는 문화적 인터페이스는 십중팔구 영국과 미국의 앵글로색슨 남자들이 만들었다.

근대사에서 그 다음으로 발명을 많이 한 것은 프랑스 남자들이다. 물론 그들은 혁명과 코뮨, 패션, 영화라는 가장 충격적이고 낭비가 심한 문화적 모델을 인류에 제시했으니, 창안의 가짓수에서 앵글로색슨에 밀린다손 치더라도 드높은 자긍심에 손상을 입지는 않는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산업화에 뒤지긴 했지만, 기계 공예에 능해서 엔조 페라리 같은 위대한 스포츠카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각종 에스프레소 기계 등 수많은 명품을 제조한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식민 통치를 통해 영국 등 유럽 전역에 문명의 정수를 제공한 대로마제국이 나오니, 또한 자존심에 먹칠할 까닭이 없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멍에를 짊어진 패전국이지만, 그래도 ‘유럽통일’이라는 문제적 목표를 실현할 뻔 했고, 또 위대한 현대 문학과 음악 등으로 세계의 정신문화를 이끌었으니 자괴감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아시아로 눈길을 돌리면 상황은 반전된다. 일본조차 문화 인터페이스를 창안한 경우는 많지 않다. 한때 전 세계 젊은이들을 매료시킨 워크맨 덕분에 ‘축소지향의 전통 철학을 현대사회에서 꽃 피운다’는 칭송까지 들었던 일본이다. 하지만, 대기업 소니는 바보 같이 걷는 로봇이나 만들더니, 이젠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곤경에 처했다.

일본에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발생해 세계를 제패했다는 이야기는 게임 속 가상인물인 마리오 형제 이후 오락기 시장에 국한되는 것 같다. 산업혁명 이후 중국인들이 창안한 것은 무엇인가? 문화혁명이라는 무시무시한 문화적 모델을 인류에 제시했지만, 아무도 모방하지 않았다. 자, 그렇다면 우리 한국은 어떤가?

한참 고민해 봐도, 김치의 인기에 편승한 김치 냉장고의 경우와 최초의 상업적 MP3 플레이어가 중소기업인 새한정보시스템에 의해 출시된 것외에는 떠오르질 않는다.

대신, 전화기를 달고 있는 정수기, 인터넷이 되는 냉장고, 앙드레 김의 문양으로 무장한 에어컨 등 다소 황당한 사례들만 잔뜩 뇌리에 떠돈다. 과연, 우리 아시아인들은 언제쯤 문화적 인터페이스의 창안으로 인류에 기여하게 될까?

근거 없는 도취감에 젖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떠들며 디자인 국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일단 처참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냉철한 현실 인식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대학에서 만나는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은 문화적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데 있어 상당히 둔하고 어수룩한 모습이다. 그러니 빼어난 창안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은 교육의 문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미술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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