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하고 떨려요.”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최대 빈민촌 톤도 바세코에서 아들 말빈(4)의 구순구개열(언청이) 수술을 위해 한국을 찾은 말린(32ㆍ여)씨의 눈에는 14일 눈물이 글썽거렸다. ‘필리핀의 난지도’인 바세코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져 하루 8,000원의 수입으로 가계를 꾸려온 그에게 아들의 수술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다일공동체(대표 최일도 목사)는 절망에 빠져 있던 그에게 구세주나 다름없다. 노숙자들과 빈민들을 대상으로 사랑 나눔 밥퍼 운동을 하고 있는 필리핀 다일공동체가 말빈을 ‘아름다운 변화 프로젝트’(Beautiful Change ProjectㆍBCP)에 초대해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게 됐다.
BCP는 다일공동체가 2005년부터 아시아의 빈민촌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구순구개열 수술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주는 사업이다. 포스코가 지원하며 지금까지 5차례에 걸쳐 필리핀과 캄보디아 등의 빈민촌 어린이 22명이 혜택을 보았다.
말빈과 함께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 12일 한국을 찾은 아이들은 모두 5명이다. 노엘(4)과 조마리(2), 잔카알(2)은 말빈처럼 바세코에서 왔고 갓난아이 펑산은 중국 지린(吉林)성 훈춘(琿春)에서 왔다.
이들은 남들과 다른 외모때문에 빈민촌에서조차 소외됐다. 다일공동체 자원봉사자 최현주(51ㆍ여)씨는 “구순구개열 장애로 어려서부터 모유를 제대로 먹지 못해 체격이 또래에 비해 왜소한 데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따돌림을 받는다”고 전했다.
특히 5개월 된 펑산은 언청이라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김학용(48) 훈춘 다일 어린이집 원장은 “산아 제한이 엄격한 중국에서 장애 아동이 태어나자 버린 것 같다”며 “이번 수술로 아이의 인생이 변화되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려운 기회를 잡았지만 새 삶을 찾아 떠나기도 쉽지 않았다. 빈민촌 지역에서 주민등록도 없이 살아온 이들이 국경을 넘기에는 장벽에 너무 많았다. 다일공동체 사람들이 몇 달간 직접 관공서를 쫓아다니며 이름을 올린 뒤에야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종교를 뛰어 넘는 사랑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도 있었다. 부모가 모두 이슬람교인 조마리는 기독교 단체인 다일공동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자체가 ‘모험’이었다. 이옥주(37ㆍ여) 다일공동체 홍보실장은 “의료와 관계되는 행사라도 이슬람교 관습상 기독교 행사에 참가하면 최악의 경우 목숨을 내놓게 될 수도 있다”이라고 말했다.
5명의 아이들은 16일과 17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다일천사병원에서 서울대 치대 학장을 지낸 정필훈(52) 교수의 집도로 수술을 받는다. 노엘의 아버지 린다베스(31)씨는 “아들이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는 게 습관이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며 우리말로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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