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선주자 정책 토론회를 개최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중에서 어느 당 주자들이 다음과 같은 공약들을 내놓았을까요?
신혼 부부 1가구에 1주택 공급, 반값 아파트 제공, 3~5세 유치원 비용 국가 부담, 근로소득세 폐지, 성인 1인 1주택 소유로 제한, 헌법 개정 통한 토지공개념 도입….
이런 질문을 던지면 민노당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답은 한나라당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등 한나라당 대선주자 5명의 공약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이라면 진보 정당의 정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민노당 주자들이 제시한 부유세 도입, 토지 20% 국유화, 비정규직 200만명 정규직화 등의 공약과 한나라당 주자들의 정책을 비교하면 겨냥하는 계층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세계의 주요 정당들이 한 표라도 더 얻어 집권하기 위해 진보ㆍ보수 유권자들을 모두 잡으려는 전략을 펴는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 주자들이 민노당과 비슷한 정책을 내놓는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이념ㆍ계급 정당을 지향했던 서구의 정당들도 요즘엔 좌우 양 날개 표를 모두 잡으려는 ‘캐치 올 파티(Catch_All Party)로 기울고 있다. 집토끼와 산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전략을 펴는 것이다.
캐치올 정당은 이념 갈등을 누그러뜨리면서 국민 통합을 지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도 갖고 있다. 문제는 캐치올 전략이 도를 넘으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실천하기 어려운 공약을 내걸어 포퓰리즘(Populism)으로 흐르면 국가뿐 아니라 정치지도자 자신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대중 인기 영합적 정치 행태, 실현 불가능한 공약 제시와 정책 실패, 서민층과 기득권층 양측의 이탈과 지지 기반 붕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민중의 벗’을 자임하는 포퓰리즘 정권들은 빵을 더 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처음엔 서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결국 빵 문제를 풀지 못해 좌우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물론 전통적 보수세력인 한나라당은 포퓰리즘 정당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장밋빛 공약을 쏟아내는 것은 포퓰리즘과 유사한 행태로 볼 수 있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공약이 모두 실현된다면 선진국을 넘어 파라다이스가 되겠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까.
집권자의 리더십 위기는 주요 공약의 실패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 때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쌀 수입을 막겠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집권 후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라 쌀 부분 수입을 하게 되면서 지지도 급락 위기를 맞았다. 또 주요 정당들이 좌우 양쪽을 모두 껴안기 위한 공약을 남발한다면 정당 간의 건전한 노선 대결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각 정당이 자신의 중심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중도쪽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또 세입ㆍ세출 계획도 제시하지 않고 불과 한 마디 말과 문장으로 거창한 공약을 외치는 일도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공약 남발의 시대에는 당장 인기가 없더라도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공약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 있는 후보가 오히려 국민 시선을 더 모을 수 있다. 어느 때보다도 청와대 가까이에 가 있는 한나라당 주자들은 캐치올 전략에 너무 연연하지 말았으면 한다.
김광덕 정치부 차장대우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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