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4년 로마 시내가 6일간 불에 타는 대화재가 발생하자, 지방에 있던 27세의 젊은 황제 네로는 급거 귀환한다. 진화 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개인 재산을 털어 비용을 충당했고, 황궁을 개방해 피해자들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했다. 이러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던 미치광이로 기억되고 있다.
불은 로마식 아파트 ‘인슐라’(insula)에서 시작됐다. 5층 정도 높이에 1층에는 상가, 나머지 층에는 주택이 있는 인슐라는 요즘의 주상복합건물이다. 하층민들이 살았던 인슐라는 나무로 지은 데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화재에 무방비였다.
▦ 잿더미의 로마를 재건하면서 네로는 새로운 기준을 선포했다. 모든 시가지를 격자형으로 만들되, 소방도로를 두며, 인슐라는 7층 이하로 짓고, 건물 사이에는 이격거리를 두며, 화재 시 대피할 베란다를 설치하는 것 등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도시계획과 건축의 주요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대학에서 ‘로마의 재탄생’ (www.romereborn.virginia.edu)이란 3차원 컴퓨터 영상으로 재현해 화제가 되고 있는 로마시내의 웅장한 모습에는 네로의 숨은 공이 있다.
▦ 근대적 아파트는 19세기 영국에서 첫 선을 보였다.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열악한 주거난이 사회 문제가 되자 영국 정부는 집합식 주택을 대거 지어 보급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빈민의 주거양식인 아파트가 유독 한국에서는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같은 의문에서 시작해 ‘아파트 공화국’이란 통찰력 있는 책을 펴낸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가 도시중산층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아파트가 상품으로, 재산축적의 수단으로 활용돼온 것도 이유라고 지적한다.
▦ 동탄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 과연 신도시 건설이 바람직한 주택 정책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막대한 시세차익이 투기열풍을 부르고, 천문학적 보상비가 다시 부동산 시장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구조적 문제점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주택 하면 아파트를 떠올리는 획일적인 우리의 주거문화도 다시 한번 돌아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줄레조에 따르면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관리ㆍ유지 비용이 많이 들고 재개발의 일상화를 낳는다. 그 결과 서울은 오래 지속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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