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언론은 사람과 명성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야수떼 같다. 언론은 책임은 지지 않은 채 권력만 향유하며 세대를 통해 창녀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여론이 밀려 27일 물러나는 토니 블레어 총리가 12일 영국 언론을 향해 작심한 듯 독설을 퍼부었다. “쓰레기 거리가 될 것을 각오하고 언론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자신의 표현처럼, 그는‘야수떼’‘창녀’ 등 격한 말까지 동원해 작심하고 언론을 맹비난했다.
외피는 무책임하게 특종에 탐닉하는 언론 행태를 질타한 것이지만 이라크전 참전을 강도높게 비판한 인디펜던트를 집중 공격한 점에서 자신의 지지도 추락 책임을 언론에 떠넘기려는 술책이라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직격탄을 맞은 인디펜던트는 13일자 1면에 ‘우리가 이라크전을 지지했어도 이렇게 말했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대대적인 반격을 나서는 등 블레어 총리 발언이 자칫 영국 정부와 언론과의 전쟁으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노동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해온 좌파 성향의 신문인 인디펜던트는 영국의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친 블레어에서 반 블레어로 전향했다.
블레어 총리가 이날 런던 로이터통신 본사에서 행한 연설에서 “낙종 불안감으로 언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떼거리로 사냥감을 찾는다”며 “웹사이트 뉴스, 블로그, 24시간 TV뉴스 채널의 도래로 언론은 점점 더 위험한 정도까지 충격을 쫓아다니는데 이것이 언론 수준을 떨어뜨리며 대중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언론과 정치인 관계가 훼손됐으며, 정치인이 나라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역량을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디펜던트를 지목해 “사실 보도보다는 자신들의 관점을 주장하는 ‘의견 신문(viewspaper)’이 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독자로 하여금 사실과 의견을 혼동케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블레어 총리는 “집권 초기에 적대적인 보수 언론에 구애하고, 달래고, 설득하려 했던 노동당의 노력이 이런 문제점을 키웠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총리직을 떠나는 입장이기 때문에 많은 망설임 끝에 쓰레기 거리가 될 각오하고 언론에 정면 도전하는 이 연설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국 언론인들은 “블레어 총리가 인디펜던트를 지목한 것은 비겁하다”고 비난했다. 영국 언론계의 선정적 보도 행태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더 타임스 등이 가장 심한데 이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정권에 비판적인 인디펜던트만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당 문화담당 대변인 돈 포스터는 “정치인이 스스로의 신뢰 상실을 언론 탓을 하기 쉽다”며 “그러나 좀 더 공정하게 분석해보면 문제는 블레어 자신의 홍보 정치”라고 비판했다.
블레어 총리는 1997년 취임 당시에는 80%에 육박하는 국민적 지지를 얻으며 화려하게 총리직에 올랐지만 이라크에 파병함으로써 10년 만에 더 이상 집권할 수 없을 정도로 지지율이 바닥을 쳤고 27일 퇴임한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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