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초 중국의 동북 국경도시 단둥(丹東).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 무역상 류(劉)모씨는 압록강 너머 북한으로 뻗어 나가는 신중화의 기세를 웅변하는 한 예를 소개했다.
“기자양반 평양에 가 보셨소. 거기 주민들이 입고 있는 의류와 소지품을 살펴보시오. 90%이상이 중국산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바로 이곳 단둥을 통해 넘어간 겁니다.” 그리고 평양에서 중국산 수입품은 번듯한 상점에서 팔리지만 조잡한 북한산은 거리의 좌판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만약 중국쪽에서의 물자 공급루트가 끊기면 북한은 엄청난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최근 단둥과 압록강 건너 북한 신의주의 관계는 도시 대 도시의 차원이 아니라, 중국의 작은 1개 도시와 북한전체의 차원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단둥의 상대는 신의주가 아닌 북한경제 전체라는 말이다. 단둥에서 북한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50%를 넘어섰음을 쉽게 실감한다.
지난해 17억 달러의 북중 무역액의 80% 이상이 단둥에서 이뤄졌다는 수치가 이를 입증한다. 단둥에서 만난 평양출신 무역상 최모씨는 “단둥 무역상 대부분이 평양과 직거래하고 평양을 거쳐야만 다른 지방과의 거래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둥의 맞상대는 사실상 북한 전역”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단둥에서는, 중국의 다른 변경 도시가 국경너머 도시와 함께 하는 특유의 상생(相生) 모습이 안 보인다. 14년째 단둥에서 살고 있는 고진영씨는 “신의주 풍경은 14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매일 고층빌딩이 올라가는 단둥과 잿빛 신의주의 풍광은 너무도 대조적이라고 한다.
단둥에서 북한의 흔적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 트럭과 무역상들이 붐비는 압록강변 단둥 세관을 벗어나면 북한 상품은 찾아볼 수 없다. 단둥 시내 어느 상점을 가더라도 북한 상품이라고는 북한 지폐와 김일성 배지 등 조잡한 기념품이 전부이다. 몇 년 전 만해도 북한에서 넘어오는 트럭에 상품을 실려있었지만 이제는 빈차로 넘어와 중국 상품만을 실어 나른다.
중국인 대북 사업가 P모씨는 “북한 경제는 100% 중국에 종속된 상태”라고 말했다. 북한으로 유입되는 물자의 80%는 중국제품이고, 5%는 일본산(중고제품 포함), 5%는 한국산으로 추산된다.
단둥에서 최고급 의류를 취급하는 상점 수이위앤(隨緣)의 ‘피에르 가르댕’ 코너 점원은 “북한 무역상들이 최고급 구두와 의류를 무더기로 사간다”고 전했다. 부동산 붐을 타고 단둥의 아파트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북한의 일부 부유층은 고급 아파트를 중국인 명의로 구입하고 있다. 남측의 대북 사업가 이모씨는 “평양의 파트너들은 신의주에서 와서 중국 휴대폰으로 연락한다”고 전했다. 압록강변에서 북한쪽으로 5~10km 정도까지는 중국 휴대폰이 터진다.
북한 경제의 종속은 화폐에서도 확인된다. 무역업자들은 달러와 위안화를 기준화폐로 사용하지만 위안화 사용이 더 빈번하다. 압록상 수풍댐 밑 평북 삭주군의 북한 주민들은 강변에 나와 한국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손을 벌려 위안화를 얻어 쓰고 있을 정도였다.
단둥에서는 지금 북한 지하자원 붐이 한창이다. 돈이 되는 것은 금, 몰리브덴 등 북한 지하자원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어렵게 만난 한 중국인 브로커는 북한 지하자원만이 수지 맞는 장사라고 역설했다. 중국의 독식으로 북한 자원이 동난다는 우려를 건네자 그는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만 캐는 중”이라며 일축했다.
단둥 시당국은 현재 압력강변 3,000만평을 린강(臨港) 개발구로 조성중이다. 중국인 인(尹)모씨는 “신의주 특구가 건설되더라도 린강의 하청업체 지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단둥을 비롯한 동북3성을 개발중인 중국이 현재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신의주의 개발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개발 전략에 철저히 억눌리고 있는 북한의 열세가 당분간 극복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압록강 건너 북한은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 중국의 다른 접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더 중국 경제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음을 이곳 단둥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단둥(중국)=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 북한 화교 출신 4000명 무역 核으로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라 2002년 평양에서 중국 단둥(丹東)으로 이주한 북한 화교(중국국적) 출신 류(劉ㆍ31)모씨는 매주 트레일러 트럭 2대 분량의 물건을 북한에 수출하는 전형적인 대북 무역상이다.
류씨 같은 화교 출신들은 단둥 세관을 거쳐 북한으로 넘어가는 트레일러 50~100대(1일) 분량의 상품 9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 화교 출신이야말로 북중 무역의 주역인 것이다.
북한 화교 출신들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북한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면서 북한을 탈출, 단둥 등 중국 대륙에 자리잡았다. 단둥에만 이들이 4,000명 가량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 내 조선족들이 주름잡던 북중 무역을 이들이 장악한 배경에는 북중 무역 특유의 대금결제 방식이 숨어있다. 한 조선족 무역상은 “화교 출신은 평양, 신의주 등지에 부모 형제 등 친척이 살고 있어 이들과 거래할 경우 돈을 떼일 염려도 없고, 설사 북한의 다른 무역상과 거래하더라도 돈을 받기가 용이하다”고 말한다.
단둥 세관을 통한 육상 교역은 중국측에서 물건을 먼저 보내고 북으로부터 돈을 나중에 받는 후불제이기 때문에 북에 근거지가 있는 화교들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조선족 무역상 J모씨는 “조선족 무역상들은 북한으로부터 돈을 떼여 망한 사례가 너무 많아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화교 출신의 장점은 대금 결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류씨는 “트레일러 1대에 식품 등을 실으면 10만~15만위안(1,200만~1,800만원)정도의 물건을 적재하는데, 세관수수료 등을 제외한 이익은 800위안(9만6,000원) 정도 밖에 안 된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악착같이 사업을 진행하지만 조선족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화교 특유의 기질이 큰 몫을 하는 것이다. 화교 출신은 중국인이기 때문에 물건 조달에 유리하고, 중국 당국도 은연중에 이들의 성장을 부추기는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
류씨는 “화교 출신은 중국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돈에 대한 일념으로 북중 무역에 매진한다”며 “돈을 벌어 평양에 있는 부모를 중국으로 모셔오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화교 출신은 완벽한 북한 언어를 구사하고 북한을 ‘조국’으로 말하는 등 북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북한 화교 출신 중 일부는 이미 대북 무역으로 밑천을 벌어 부동산투자 건설업 진출 등 본격적인 ‘자본가’로 도약중이다.
화교자본이 동남아 경제를 주름잡듯 북한 경제 전체가 화교 영향권에 놓이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듯하다.
단둥=이영섭특파원
■ "한국 정부, 단둥 가치 너무나 소홀히 생각"
단둥(丹東)을 근거지로 북한과 무역 거래를 하는 한국 기업인들은 절망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북한의 대외 교역 거점(단둥)을 한국 정부가 너무나 소홀히 생각한다”고 한탄했다.
북한과 의류 임가공 사업을 하는 L모씨는 “중국 땅을 거치더라도 남북이 교역을 할 경우 그것은 광의의 남북 직교역”이라며 “하지만 어떠한 우대나 장려정책은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의류 임가공 사업에 대한 불만이 높다. 2003년 남북은 단둥을 통해 의류 임가공 사업을 할 경우 북한측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라는 창구를 거쳐야 북한 원산지 물자로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민경련은 창구 통과 비용으로 이윤의 5%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고 있어 남측 기업은 물론 임가공을 맡은 북한 기업들의 의욕을 꺾고 있다. 때문에 단둥을 경유하는 남북간 의류 임가공 규모는 매년 감소중이다.
한국 기업인들은 북한 물자가 단둥을 통과하더라도 남측으로 직행할 경우 남북 직교역에 준하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단둥에서 해운사업을 하는 K씨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외국산 제품이 무관세장벽으로 들어오는 마당에 단둥을 경유한 물자들은 고관세 장벽에 막히고 있다”고 말했다.
단둥에 단기 파견돼 나온 통일부 관계자도 “단둥을 남북 교역 확대의 무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공감했다. 단지 중국 땅이라는 이유로 이곳에서 진행되는 남북교역을 외면하는 경직된 자세로는 북한의 경제를 종속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어렵다.
단둥=이영섭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