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얘기가 나오자 차분하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나라의 금융업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외국 금융기관처럼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
현 회장의 금융경영 지향점은 명확했다. 동양그룹의 금융부문을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같은 최고의 투자은행(IB)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현 회장이 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13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그룹 경영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소개했다. 그룹의 성장동력으로 ▦제조업(건설 가전 시멘트) ▦레저(골프 리조트) ▦금융(증권 보험 투신 창투 선물) 등 3대 분야를 제시하면서, 그 중에서도 특히 금융분야에 역점을 둘 것임을 시사했다.
사실 현 회장은 그 연배(58세)의 그룹 총수에선 보기 드문 금융전문가다. 요즘 젊은 재벌 3,4세들이야 외국대학에서 금융을 전공하기도 하고 투자은행이나 로펌에서 금융현업을 익히기도 하지만, 현 회장은 이미 1981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금융공학으로 MBA를 받았다. 금융선물협회장을 지냈고 전경련에서도 현재 금융조세위원장을 맡고 있다.
동양그룹이 1980년대 중반 금융업에 뛰어든 것도 현 회장의 이런 관심 때문이었다. 비록 외환위기이후 동양그룹이 크게 휘청거렸던 것 또한 금융 계열사들이 떠안은 부실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금융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는 역력했다.
현 회장은 동양증권의 투자은행 전환과 사모펀드(PEF) 시장진출을 선언했다. 현 회장은 "골드만삭스나 리만브라더스 같은 선진국 투자은행들은 주식이나 채권 뿐 아니라 골프장이든 호텔이든 기업이든 그림이든 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투자한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금융기관이 투자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향후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되면 동양종합금융증권을 투자은행으로 전환시키고 사모펀드에도 진출할 것"이라면서 "살아있는 기업을 사고 파는 사모펀드야말로 금융투자분야의 최고형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동양그룹은 향후 동남아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투자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현 회장은 "우리 경제도 유동성이 넘치는 상황인 만큼 자본수출국이 되어야 한다"면서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발전가능성이 높은 동남아지역에서 본격적인 (기업M&A등) 투자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계획도 밝혔다. 내년 동양생명이 기업공개와 상장에 나서는 것을 계기로 그룹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형태로 점차 전환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경기고 서울대법대를 나와 사법고시(12회)에 합격, 검사생활을 하던 현 회장은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맏사위가 되면서 법복을 벗고 기업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룹에서 분가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은 현 회장의 손아랫동서. 하지만 동양그룹은 동양시멘트 설립을 기준으로 올해 50주년을 맞았으며, 오리온그룹은 오리온제과 설립을 기준으로 지난해 50주년 행사를 가졌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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