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는 격투로봇이에요.”
충남 천안의 한국기술교육대(총장 정병석ㆍ이하 한기대) 매카트로닉스 공학부에 다니는 조보람(3년)양과 이인화(2년)양은 요즘 격투로봇과 사랑에 푹 빠져있다. 이들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로봇격투대회에 발을 들인지 1년도 안돼 각각 6회 우승으로 로봇격투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들이 국내 격투로봇 최강팀인 한기대 로봇동아리 ‘가제트’팀 소속으로 경기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해도 경쟁팀들은 ‘가제트의 마스코트’ 정도로 여기며 깔보았다. 현재 활동 중인 국내 로봇팀은 30여개. 여기에 속한 1,000여명의 파일럿 가운데 여성선수는 실업팀과 대학팀에 각각 1명씩 2명이 있지만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조양 등은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보람양은 2006년 9월 동아리 가입 2개월 만에 EBS대회에 출전해 최고수 자리에 올랐고, 올해 5월까지 6번이나 우승했다. 상대팀 파일럿은 모두 남성이었다.
인화양의 우승은 더욱 빨랐다. 동아리 가입 3일만에 “경험 삼아 나가 보라”는 선배에게 등을 떠밀려 출전한 지난해 11월 EBS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통산 우승횟수가 6회에 이른다.
빼어난 외모의 두 여학생이 침착하고 냉정한 로봇조정 실력으로 남성팀을 차례로 꺾고 스타로 떠오르자 로봇마니아들은 ‘로봇여전사’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이들의 재능은 뛰어난 로봇조정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션(동작제어 프로그래밍)과 부품 설계, 제작을 직접 해낸다. 가제트 팀이 보유한 로봇 ‘가제트’와 ‘제나’‘이카루스’에는 이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조양은 어렸을 때부터 인형과 순정만화보다 블록 놀이와 로봇조립을 더 좋아했다. 여고시절 부모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로봇동아리가 유명한 한기대에 들어갔다. 이양은 로봇제작과 조종은 과학자만 하는 줄 알았던 여고 1년 때 TV에서 한기대 로봇팀이 로봇격투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의 학교생활은 로봇과 함께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연간 10회 이상 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에 수업 이후 시간은 격투조종 훈련과 보수, 프로그램조정 작업에 매달리느라 기숙사 귀가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방학도 새로운 로봇제작과 팀 훈련 등으로 바빠 미팅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조양은 “로봇이 남자친구가 돼 버렸다”며 “졸업 이후에도 실업팀에 들어가 로봇파일럿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양도 “로봇은 가까이 할수록 빠져드는 마약 같은 매력이 있다”며 “세계 로봇대회에 나가 한국 로봇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천안=이준호기자 junh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