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생산하는 통계 자료의 부정확성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특히 사교육과 관련된 통계는 믿기가 어렵다. 정부는 얼마 전 ‘전국 초ㆍ중ㆍ고교생의 60% 이상이 1인당 월평균 25만원 이하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내용의 자료를 내놓았다.
올해 1ㆍ4분기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이 376만4,000원이니, 대부분의 가구가 월 소득의 7% 미만을 사교육비로 지출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 정도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가정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기자의 경우 중3, 중1 두 자녀 사교육비로 월급(도시근로자 가구 중 소득 7분위인 상위 40%에 해당)의 25~30%를 쓰고 있다. 큰 애는 동네 공부방(자습 형태로 전과목 지도)과 미술학원, 작은 애는 공부방과 영어학원을 보낸다. 중간층 학부모들에 견줘 결코 사교육을 많이 시킨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라고 다를 게 없다. 억대 연봉을 받는 친구들 중에는 월급의 절반이 사교육비로 들어간다고 투덜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득 10분위(상위 10%)에 속하는 한 친구는 “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그는 외국어고에 다니는 아들의 사교육비로 매달 500만원 이상 들어간다고 하소연한다.
정부 통계를 그대로 인용하더라도 2003년 11조원 수준이던 사교육비는 지난해 3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올해 정부 교육예산 31조450억원과 맞먹는다. 교육 부문의 비효율성과 중복투자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사교육 망국론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비정상적인 가계 지출이 낳는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한 단계 올라갈수록 사교육비는 껑충 뛰고, 교육비에 치여 노후준비는 언감생심이다. 한창 뛰어 놀 나이에 학교 공부도 모자라서 밤 늦게까지 사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사교육비가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청계천 살렸듯 경제 살리겠다”, “5년 내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며 모두 ‘경제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최근 창간 53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이 ‘가장 편안하게, 가장 잘 살게’ 해줄 지도자로 재벌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후보를 1위로 꼽은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래서인지 후보들의 공약은 ‘경제 살리기’에 잔뜩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 보면 주요 공약이라는 게 ‘성장’과 ‘개발’ 일색이고 교육 관련은 한참 뒷전이다. 사교육비는 사실 교육 문제라기보다는 경제 문제다. 중ㆍ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경우 절대 액수에선 차이가 날지 몰라도 가계 소득의 20~40%를 사교육에 쏟아 붓는 게 현실이다.
과중한 사교육비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구조적 소비 부진을 낳고 있는 핵심 경제 현안인 셈이다.
한반도 대운하나 열차페리 건설사업으로 경기를 부양한다고 해서 서민들 삶의 질이 개선될지는 의문이다. 설령 경제성장 7% 달성으로 경기가 조금 나아진들 사교육비 비중이 갈수록 커져 가는 가계 지출구조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성장의 과실이 소비의 선순환 구조로 연결되기는 요원하다.
사교육비 잡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주겠다는 유권자들이 많은데, 경제대통령을 꿈꾼다면 공약의 우선순위를 조정해보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고재학 사회부 차장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