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본보 대선보도 자문교수 5명과 다양한 현안을 두고 진솔한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9일 오전 12시30분부터 2시간동안 서울의 한 호텔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하면서 진행됐다.
● 검증 공방 등 정치 현안
_검증을 두고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선거는 검증의 과정이다. 한나라당은 더 이상 실패 해서는 안 된다. 후보 개인이나 당을 떠나, 국가 차원에서 이런 식의 국정 운영은 안 된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반드시 정권 교체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 그러려면 본선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
본선에서 여당이 주도하는 검증은 지금보다 더욱 가혹할 것이다. 그걸 다 뚫고 이겨야 한다. 이번에는 확실히 해야 한다. 당에서 책임감을 갖고 철저히 할 것이라고 믿는다."
_이명박 전 서울시장측에서는 박 전 대표와 관련된 CD가 있다는 얘기를 한다.
"잡지에서 봤다. 무슨 내용이 있겠나. 관련 기사를 쓴 기자도 검증할 거리가 없다고 결론 냈더라. 실체가 없다."
_당 안팎에서 검증 과열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사석에서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얘기한 게 몇 달이 지나서 보도되고 하더라. 녹취했다는 얘기도 들리고….(곽성문 의원이 이 전 시장의 8,000억원 재산의혹을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언급했는데 이를 이 전 시장측이 먼저 공론화했다는 의미). 이런 것은 문제가 있다."
_양 대선주자 진영에 소속된 의원들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 모두 정권 창출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동지다. 지금은 경선이니까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당 대표로 있을 때도 그랬다. 한나라당은 개성과 주관이 뚜렷한 분들이 많다. 하지만 총의를 모아서 해냈다."
_경선에서 지면 어떻게 할 건가.
"당연히 후보를 도울 것이다. 당원으로서 당연한 의무다. 경선 경험이 많지 않아서 다들 무슨 큰 일이 날 것이라며 걱정들을 한다. 하지만 미국을 봐라.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지나고 나면 다 괜찮아지지 않나. 우리는 그런 역사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_요즘 여론조사 지지도가 상승세인데 언제쯤 역전할 것 같나.
"언제라고 말씀 드릴 수도 없고, 차이가 많이 줄었으니 더 열심히 하겠다."
_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 말 어떤 대통령으로 평가 받고 싶나.
"되기도 전에,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다"(웃음)
_대통령이 된다면 국정운영의 최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고 싶나.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 국민이 국가지도자를 신뢰하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신뢰가 있어야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고, 그래야 발전을 할 수 있다. 국가지도자를 신뢰한다는 것이 말은 간단하지만, 엄청난 의미가 들어가 있다.
하나라도 이상하고 잘못되면 신뢰라는 말이 안 나온다. 리더십은 결국 신뢰가 아닌가.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신뢰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을 펴도 먹히지 않는다."
_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은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지금 언행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국정을 잘 마무리 하는데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_한나라당이 요즘 전국적 지지를 받고 있다. 영남당을 극복할 좋은 기회다.
"전국 정당이 우리의 목표다. 딴 비결이 있는 게 아니다. 아이 잘 키우고, 취직 잘 되고, 집 걱정ㆍ 노후 걱정을 안 할 집권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천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_한나라당의 최근 지지율은 반사 이익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이 부패하거나 비민주적인 행동을 한다면 저쪽(여권)이 아무리 못한다고 해도 우리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쪽이 싫으니까 무작정 우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_사회 일각에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 총리나 대통령이 나온 나라는 대부분 선진국이다. 굉장히 투명하고 부정부패가 없다. 아일랜드 등을 보면 국민소득도 엄청나게 많이 뛰었다.
이런 나라에서 온 대사들과 식사 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물어봤다. 하나도 없다더라. 밀실 정치나 부정부패가 없어진다. 그건 세계적으로 공인된 사실이다."
_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여전하다고 보나.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을 병행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보육, 교육문제도 정상화 해야 한다. 걱정 안하고 애기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 편견도 중요한 문제다.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그런 문제는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 여성대통령 자체가 우리 사회로서는 굉장히 큰 변화, 엄청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한다."
● 정치성향
_언제부터 대통령을 꿈꿨나
"딱히 언제라고 하기는 그렇다. 국민이 너무 지쳐있고 살기 힘들어 한다. 대학생은 취직 걱정, 군대 가도 취직 걱정, 재래시장에 가면 장사 안 된다고 하고, 택시 운전 기사도 아우성이다. 아이 엄마는 육아 교육문제, 어르신은 노후와 안보 걱정을 많이 한다.
걱정이 많은 사회다. 이유가 뭔가. 국가 지도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지도자가 바른 국가관, 철학,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안되면 나라가 어려워진다. 그 동안 지켜온 원칙 약속, 신뢰들을 바탕으로 국민들이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는 선진국을 꼭 만들어 보고 싶다. 사심 없이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할 마음의 자세가 돼 있다."
_다소 경직된 원칙주의자로 평가 받는다.
"딱딱하게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원칙은 기본적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너무 원칙을 안 지키니 상대적으로 원칙주의자로 보이는 것 뿐이다.
당 대표 때 노 대통령께 원칙을 지키라고 했는데, 다른 게 아니라 헌법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이 정부가 기본적인 헌법을 안 지켰다는 얘기다. 지난 번 경선 룰 논란도 여러 차례 토의를 거쳐 합의가 됐다면 지켜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다음 정부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 어떤 게 선진국이냐. 3만 달러, 5만 달러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경제도 발전하고 다른 분야도 꽃이 필 수 있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보상 받고 성공하는 나라여야 한다. 부정부패로 성공하고, 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성공하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한다. 아니면 집권한 후에 어떻게 선진국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겠나. 우리가 OECD 29개 국가 중에 법을 안 지키는 것으로 끝에서 3번째라고 하더라. OECD발표에 의하면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법만 제대로 지켜도 매년 2%씩 더 성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_변화와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나만큼 개혁적인 사람이 있나. 당 대표 할 때 모든 것을 바꿨다. 기득권을 포기했다. 공천, 인사, 재정을 당의 시스템에 따랐다. 사조직, 계파, 파벌을 없앴다.
경선 룰을 만들 때도 개인의 유불리를 조금도 따지지 않았다. 그간 당에 덧씌워 있던 지역당 수구당 등의 오명도 많이 걷어냈다고 생각한다. 당헌 당규도 엄격하게 지켰다.
지난 지방선거 때는 중진 의원을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천안 연수원도 깨끗이 헌납했다. 우리에게 취약한 호남, 충청 지역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 우리를 많이 지지하고 있다."
_국가보안법 개폐, 사학법 재개정 등의 대처 과정에서 수구란 말도 들었다.
"수구가 아니라 나라를 지킨 것이다. 퍼주는 것이 진보 같지만 그렇게 해서 대북 정책이 성공 했나. 당 대표 때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누차 주장했다.
그런데 이 정부가 무원칙으로 하다 보니 북한에 끌려 다녔다. 북핵에 대해 유엔이 제재 결의 했는데 그렇다면 국제사회가 다 수구가 되는 것인가. 국가보안법은 분단 상황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사학법도 그렇다. 내가 수구라면 많은 기독교 교육자들도 다 수구인가. 현재의 사학법으로도 사학 비리는 척결이 가능하다. 왜 1.2% 비리사학을 핑계로 모든 사학을 옥죄나."
● 감세 등 경제 분야
_교육은 박 전 대표가 잘한 것이라는 기대가 많은 데 아직 경제 쪽은 아닌 것 같다.
"지난번 경제토론회 때 이 전 시장의 대표적 공약이 대운하다. 나는 감세 정책, 즉 '줄푸세'를 내세웠다. 여론조사를 보니 내 정책이 더 많은 지지를 받았더라.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은 어느 한 분야만 잘해서 되는 자리가 아니다. 모든 분야를 통합하고 조율해야 한다.
뚜렷한 철학을 가진, 능력 있는 분들이 책임감을 갖고 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민간에게 많은 자율 주고 할 일만 하는,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로 가야 한다."
_감세가 복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있다.
"감세를 하면 복지가 축소된다는 주장에 찬성 안 한다. 오히려 감세를 통해 복지를 더 잘할 수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는 이유는 약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 골고루 잘 살자는 게 목표다.
감세를 하는 이유는 성장을 위해서다. 감세와 규제완화로 투자 더 이뤄지면 일자리가 더 만들어진다. 일자리 만큼 최고의 복지는 없다. 복지만 하면 복지를 위해 써야 할 돈이 오히려 더 들 수 있다."
● 교육 문화 사회
_사교육비 문제가 심각하다.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에 교육만큼 중요한 게 없다. 그런데 교육이 우리 국가경쟁력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교육이 문제다.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사교육비는 연간 30조원이 넘는데 이 중 15조원 이상이 영어교육 때문에 생긴다.
이 때문에 유치원 때부터 많은 돈을 쓰고, 노래방 엄마, 기러기 아빠가 생긴다. 공교육 정상화가 못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영어는 국가가 책임을 지면서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_공약으로 평준화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는데.
"평준화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찬반 양론은 있지만, 16개 광역단체별로 주민이 택하도록 하겠다. 그러면 어느 지역은 평준화가 해제돼 잘 될 수 있고, 다른 지역이 벤치마킹 할 수도 있다.
대학입시는 자율화해야 한다. 본고사가 아니다. 대학별로 원하는 학생을 뽑고 학생은 원하는 대학을 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 점수에 얽매여 원하는 학생을 못 뽑고 있다.
내신이나 수능이 변별력이 없다 보니 논술이다 뭐다 해서 왜곡되고 있다.영어교육 만큼은 영어 잘하는 것이 경쟁력이고 세계무대에서 필수 도구다. 부모들에게 부담 없게 하겠다. 국가 지도자가 의지 있으면 된다. 북유럽도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나."
_문화 선진국에 대한 비전도 갖고 있나.
"국민을 배부르게 먹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는 없다. 결국 종착점은 문화다. 문화의 격이 활짝 꽃 피고 높아질 때 국민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_최근 언론 보도에 섭섭한 것은 없나.
"가끔 있다. 굳이 이명박 후보를 의식하지 않고 한 말인데도 '의식하고 한 말로 보인다'고 토를 다는 보도도 있다. 누구에게 공을 많이 세웠다고 인사하면 그것만 보도하는 것이 아니고 '추켜세웠다'고 쓰더라. (웃음).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것처럼 돼 버린다."
△ 인터뷰에 참여한 한국일보 대선보도 자문교수
●이내영 교수(49) 정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주환 교수(43) 언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백순근 교수(46) 교육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이윤석 교수(38) 사회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홍종호 교수(44) 경제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정리=이동훈기자 dhlee@hk.co.kr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 김주환 교수가 본 '박근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서는 참으로 정치인스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인의 눈빛은 욕망이나 집착을 숨기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눈빛은 안타까움과 절실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정치적 욕망과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있으면서도 고요히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태풍의 눈. 욕망과 집요함에 가득 찬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외롭고도 절실한 마음의 여인.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신화의 기본 구조다.
청와대는 박 전 대표에게 고향과도 같으리라.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절실한 마음. 늦은 점심으로 우동을 시켜 먹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 물었다.
만약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오랜만에 다시 이사 하게 되는 어린 시절에 살던 집. 이제는 이세상 사람이 아닌 부모님과의 옛 추억이 묻어있는 곳. 무언가 남다른 감회에 젖으리라는 생각에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우선 국가적 기틀을 바로잡고, 원칙을 세우며... 하는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혹시 사적인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없느냐고 재차 물었다. 의외의 질문이라는 눈빛을 잠시 보내더니 곧 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청와대를 우리 문화의 향기를 뿜어내는 곳을 만들고 싶다는 것. 손님들에게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전통음식을 대접할 수 있게 하고, 정원에는 우리 나라 고유의 야생화를 가꾸겠다고.
태어나면서부터 박정희의 딸로 한평생을 살아왔을 그. 만약 익명성을 지니게 돼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를 물었다. 익명성이 없어서 못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단지 시간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할 뿐이라고. 그럴리가.
익명성이 있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겠지. 시간만 난다면 어디로든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도 했다. 개고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진돗개를 두마리 키우고 있다고 답변했다.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듯했다. 메모 하나 보지 않고도 세세한 문제까지 의견을 다 밝혔다. 가장 상세하게 답변한 주제가 바로 교육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여성대통령의 장점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확신을 드러냈다. 선진국의 사례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은 부정부패없는 깨끗한 정치와 부드러운 카리스마.
정치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뢰임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신뢰받을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지도자가 되겠다고 했다. 박 전 대표가 앞으로 쓰게 될 신화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몹시 궁금해졌다.
■ 인터뷰 스케치
"편안하고 좋은데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9일 본보 대선보도 자문교수들과 인터뷰를 시작하며 밝은 미소부터 건넸다. 얼굴엔 전날 교육ㆍ복지 분야 정책토론회를 무사히 치른 홀가분함도 배어나왔다. 교수들에게 테이블 위에 놓인 빵을 권하는 여유도 보였다.
빡빡하게 짜여진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하는 비결부터 물었다. 그는 이날도 경기 이천에서 열린 경기도당 등반대회에 참여했다가 급히 달려온 길이었다.
"요즘에는 뜸하지만 단전호흡을 10년 이상 꾸준히 해서 체력에는 자신이 있어요. 정치를 하면서 이 일만은 꼭 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사람들의 성원 덕분에 갈수록 힘이 솟는 측면도 있구요."
답은 예상이 됐지만 'TV 드라마를 볼 기회가 있느냐'고 물었다. "예전에 본 '사랑과 진실'이 기억 나지만 요즘에는 시간이 없어 진짜 못 본다"며 "그래도 영화 '가문의 영광' 'JSA' '두사부일체'를 TV에서 봤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박 전 대표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독서"라고 했다. 그는 "뭐든 알고 싶어하는 지적 호기심이 지금도 굉장히 많다"며 "읽지 못한 책이라도 언젠가는 꼭 읽으리라 다짐하며 집에 잘 쌓아놓는다"고 말했다.
1998년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베일에 가려진 사생활이 궁금했다. "굉장히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어머니, 아버지 얘기를 많이 궁금해 했지요. 유적지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니곤 했어요."
그리고는 당시 일화 소개로 이어졌다. "한번은 용인 민속촌에서 호떡을 사 먹으려는데 관광객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몰려 들었어요. 먹지도 못하고 가방에 넣어 민속촌을 거의 한 바퀴 돌다시피 했어요. 건물 뒤에 숨어 호떡을 먹으려는 데 한 주부가 애들을 데리고 '여기 있다. 찾았다'며 불쑥 나타나는 거에요."
그는 이어"아침에 한 얘기를 점심에 만난 사람이 이미 알고 먼저 꺼내는 경우가 있다"며 "요즘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세상이라 짬짬이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한다"고 말했다.
말랑 말랑하던 대화가 주제를 바꿔 나가자 박 전 대표의 눈빛이 달라졌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국가관, 도덕성 등 지도자의 덕목을 얘기할 때면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꼽으며 사뭇 비장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2시간이 금세 지났다. 박 전 대표는 대답 하나 하나에 신중함과 열정을 담았다. 인터뷰에 앞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지만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 우동은 면발이 퉁퉁 분 채 그대로였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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