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국내증시가 만년 저평가 상태였다는 점이나, 최근 상승에서 이렇다 할 버블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의 증시 상승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증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주식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일부에서 투기적인 매매행태를 보이고 있는 점은 걱정스럽다.
투기적 매매 증가 징후를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는 신용융자 잔액의 증가다. 신용매매는 일정비율의 증거금을 내고 주식을 사들이는 것인데, 가령 증거금률이 40%라면 주식 1,000만원 어치를 구입하는데 400만원만 자기 돈이 준비되면, 나머지 600만원은 증권사에서 빌릴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즉 고수익을 위해 큰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는 셈이다.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에 뛰어들며 바로 이 같은 신용거래 잔액이 급증하고 있다. 연초 불과 5,000억원 수준이었던 신용잔액은 어느새 4조8,000억원을 넘어서 미수금을 합치면 5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물론 개인투자자의 신용이 늘어난 것은 당국이 미수 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증권사들이 이자수익을 올리기 위해 기존에 미수거래 이용 고객들에게 신용융자를 이용하도록 유도한 탓도 있다. 하지만 과거 미수금이 많을 때에도 그 규모가 2조9,000억원 가량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신용융자 잔액은 단순히 미수 거래가 신용거래로 전환됐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같은 최근의 상황은 과거 한국증시에서 신용매매의 부작용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사건인 1990년 10월의 이른바 ‘깡통계좌 정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 1,000포인트를 넘어섰던 증시가 1989년 연말 무렵 급락기미를 보이자, 당시 정부는 투신사에 주식 매수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신용거래 제한도 풀어주는데 이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당시 무리한 신용을 썼던 투자자들 가운데는 원금을 날린 것은 물론 큰 빚까지 진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개인 투자자의 직접투자 증가가 증시 수급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신용융자 잔액의 급증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시 큰 고통을 받았던 투자자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신용을 이용하는 투자자들은 종종 주가상승에 따른 고수익만 보고 그에 상응하는 하락 위험은 간과하곤 한다. 하지만 하나만 명심해두자. 50%의 원금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다음 번에는 100%의 수익률을 거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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