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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삶의 '진짜'를 묻다

입력
2007.06.1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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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real)란 뭐지? 맛보고 냄새 맡고 귀로 듣는 것들? 그것은 그저 두뇌가 해석한 전자 신호에 불과해. 과연 진짜가 뭐지?” 영화 <매트릭스> 를 일개 공상 과학물에서 철학 담론으로 끌어 올린 영화의 주인공 모피어스의 명대사다.

이 질문이 최근 우리 소설이 그려 보이는 새 지형도 위를 배회하고 있다. 상반기 몇몇 소설은 인간의 내면성에 시선을 돌려, 영혼을 방기하는 이 시대에 대해 발언한다.

“나는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입니다”로 시작해 “나의 이름은 이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로 끝난다. 심윤경의 <이현의 연애> 는 억눌리고, 욕망하고, 고뇌하는 여인과 그녀의 남자에 대한 사랑의 기록이다.

소설은 영혼과의 접신 등 현실을 넘어서는 사건들을 엮어가며, 타자의 삶에 침투해 완전 몰입해 가는 소설가론에 닿아 있다. 죽은 남편과의 접신 등 환상적인 사건이 심령 소설의 차원을 넘어, 소설가라는 존재를 비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노희준은 <킬러리스트> 에서 범죄심리학자가 살인 사건을 풀어 가는 사이코 스릴러의 수법을 동원해 항일 빨치산_한국전쟁_베트남전_민주화 운동 등 현대사의 문제와 정면 충돌한다. 전생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는 이 소설은 통속적 범죄 소설의 관습을 통해 역사를 직시한다. 개인의 복수심은 혁명의 단초라는 것.

중견 윤대녕은 다섯번째 작품집 <제비를 기르다> 로 ‘타인의 삶’을 통해 자기 존재의 비밀에 접근하는 비의를 가르친다. 타고난 박색에다 품행도 방정치 못해 골칫덩어리였던 고모의 지지리 복도 없는 현재를 따라감으로써 삶에 숨겨진 무늬들을 본다는 <탱자> 등은 소소한 일상 속에 숨은 삶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씨는 최근 평론 <현실과 상상의 변주곡> 에서 실제와 거짓, 사실과 허구에 대한 작가의 태도에 관해 언급했다. 강씨는 “20세기의 작가들은 현실의 법칙 속에 발을 담근 채 상상의 세계에 로그인 하듯 접속했다”며 “그러나 21세기의 작가들은 상상의 영역에서 ‘진짜’를 구현한다”고 지적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개인의 실존을 완강하게 억압하던 현실은 이제 ‘낯설고 이상한 실재’가 돼 새로운 문학의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강씨는 “이들 작품은 일반 독자들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주면서도 그들이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갖는 기대를 배반한다”며 “예술로서의 소설에 열려진 또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강씨의 새 평론은 계간 <작가> 여름호에 발표된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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