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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의 삶과 경영이야기] "공적자금 없이 자력 회생…주변에선 기적이라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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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의 삶과 경영이야기] "공적자금 없이 자력 회생…주변에선 기적이라 불러"

입력
2007.06.1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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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CEO를 ‘행운’과 ‘불운’ 둘로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 아쉽지만 나는 행운 보다는 불운의 CEO에 더 가까울 것이다. 시작부터 직원의 30%를 정리해야 했으니 말이다.

과감한 구조조정 덕택에 언론은 물론 주변에서 과도한 찬사를 받았다. 당시 재경부 장관으로 계셨던 이규성 선배님은 코리안리를 ‘이상적인 구조조정 사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당시 우리 사회를 지배한 시대정신이 ‘합병’ 또는 ‘정리’였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CEO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 숯이 되기 마련이다.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나도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로서 다른 가정의 가장을 회사 밖으로 내치는 아픔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상처로 남게 되고, 구조조정 이후 회사가 좋아지면 그 상처는 회한으로 현재화해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혼자 괴로워하는 것이다.

CEO의 가슴이 타든 말든 기업도 사람과 마찬가지여서 체중을 30% 줄이고 나니 체질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인건비 절감은 물론 살아남은 직원들의 눈빛과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차광막을 걷어내 막 풍광에 노출된 온실 속 화초처럼, 오랫동안 갇혀있던 직원들의 야성(野性)이 비로소 되살아나는 듯 했다.

나는 이들을 몰고 야전으로 나갔다. 전략과 전술을 구상하고 작전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이었지만, 여의치 않으면 분대장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부여된 첫 미션은 부실채권 정리를 통한 현금흐름 개선. 적정 수준의 현금을 확보해 놓지 않으면 구조조정 효과가 가시화되기도 전에 고사할 가능성이 높았다.

부실기업이 현금을 마련하는 것은 요즘처럼 유동성이 넘치는 때에도 쉽지 않은 법이다. 가뜩이나 불신이 금융시장을 무겁게 짓누르던 외환위기 직후의 신용공황 시기였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할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석달간의 고민 끝에 결국 답을 찾았다. 부실의 핵인 보증보험 회사채 미구상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하고, 반대로 보험보상금은 미리 할인해서 갚아 버렸다.

장부상 자산을 팔고 미래의 빚을 갚는 양동작전을 편 것인데 이 작전은 주효했다. 회사채 보증으로 3,800억원의 손실을 본 98년, 우리는 구조조정과 현금흐름 개선을 통해 37억 원의 흑자를 달성한 것이다. 공적자금 없이 자력으로 회생한 최초의 회사였으니 주변에서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위기가 지나자 문밖에 서성이던 기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신감이 붙은 직원들의 사기는 충천했고 회사 실적은 일취월장했다. 구조조정 다음해인 99년의 당기순이익이 294억원으로 전년대비 7배 이상 늘어났고, 2001년 이후 매년 500억~600억 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최근 8년(99~06년)의 당기순이익 누계는 4,204억 원으로 설립이후 98년까지 36년간의 누계(827억 원)의 5.1배에 달한다. 취임 당시 7,400원(액면가 5,000원)이었던 주가는 올 2월 1만3,600원(액면가 500원)으로 18배 이상 뛰었다.

쑥스럽게도 언론은 “박 사장 취임 후 회사가 환골탈태했다”며 나를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CEO’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듣기에 나쁜 것은 아니지만 100% 맞는 말은 아니다.

환골탈태는 사실이다. 그러나 ‘마이더스의 손’은 내가 아닌 우리 직원들 몫이다. 그들이 아니었던들 나는 지금 실패한 지휘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남은 사람은 물론이고 회사를 떠나야 했던 불운의 직원을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동료들에게 두고두고 갚아야 할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자랑스러운 우리 직원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경영의 요체는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다.

코리안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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