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 미국의 잭 케보키언 박사는 루게릭병 환자인 토머스 유크에게 독극물을 주입해 숨지게 했다. 이 과정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CBS에 보내 방영하게 했고, 이듬해 ‘2급 살인죄’로 10~25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앞서 그는 90년부터 불치병 환자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자살장치’를 개발, 약 130명을 자살로 이끌어 수시로 기소됐지만, 징역형은 처음이었다.
그가 복역 9년 만에, 79세의 나이로 최근 가석방됐다. 안락사를 옹호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그의 가석방을 계기로 안락사 논쟁이 재연할 조짐이다.
■안락사는 의사의 행위를 중심으로 직접적(적극적)ㆍ간접적ㆍ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목적에서라도 환자를 곧바로 죽음으로 이끄는 적극적 행위인 협의의 안락사는 네덜란드 등 일부 예외를 빼고는 세계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와 달리 진통제인 모르핀 양을 늘리다 보니 치사량에 이른 경우와 같은 ‘간접적 안락사’는 생명 단축이 부수적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현재 가장 큰 논란은 생명연장 장치의 사용이나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에 집중돼 있다.
■‘존엄사’라고도 불리는 소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치료ㆍ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작위가 법적 비난의 근거가 된다. 또 생명은 절대적 가치라는 점에서 결과적 생명 단축을 부르는 모든 행위는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종교계를 중심으로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환자로서는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한 비인격적 삶보다는 품위 있는 죽음을 택할 권리가 있으며, 이처럼 생명권에 내재된 자연적ㆍ인격적 죽음의 권리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마땅히 허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무성하다.
의사협회의 윤리지침도 일정한 요건 하에서의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는 자주 일어나고 있지만, 유족들의 문제 제기가 없어서 조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97년 12월의 ‘보라매 병원 사건’ 이후 의사들은 환자나 보호자의 어지간한 요구에는 응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보호자의 집요한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키고, 인공호흡기를 뗀 직후에 환자가 숨진 사건에서 법원이 담당의사 2명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 경찰이 말기 간경변 환자의 요청에 따라 호흡기를 제거한 의사를 무혐의 처리했다는 소식이다. 남용만 막을 수 있다면, 존엄사의 적극적 허용을 검토할 만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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