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특히 중미에 대한 한국의 이해와 관심은 형편없습니다. 예컨대, 지난 10년 간 한국 대통령이 중미에 딱 두 번밖에 오지 않았는데, 이건 너무했습니다.”
서울 중구 태평로2가 주한 엘살바도르 대사관에서 만난 알프레도 운고(66) 엘살바도르 대사는 중남미에 대한 한국의 무관심에 섭섭함을 드러내면서 정례적인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운고 대사는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미 국가인 과테말라를 방문하고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또 다른 중미 국가인 코스타리카를 방문한 것은 세계 경제 규모 11위 국가에게 걸맞은 방문 횟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10년에 적어도 4번, 혹은 2년에 한번 정기적으로 중미국가와 정상회담이 필요한데, 한국의 대통령은 가끔 중남미를 방문하더라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같은 남미의 경제 대국들만 방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노 대통령이 7월 초에 과테말라를 방문하는 것도 오로지 2014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 때문이지 않느냐”며 방문 의도를 꼬집기도 했다. 과테말라에서는 7월 4일 국제올림픽조직위(IOC) 총회가 열리는데, 이 자리에서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된다.
중남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운고 대사는 “한국과 중남미가 함께 소속된 국제기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예컨대, 한국이 2005년 3월에 가입한 미주개발은행(IDB)이나 지난 8년 동안 매년 열린 한-중미 포럼이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고 대사는 “궁극적으로 한국이 중남미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상호이해가 극적으로 증대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현재는 칠레가 한국과 FTA를 맺고 있지만 다수의 중남미 국가들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운고 대사가 인터뷰 내내 엘살바도르보다 중남미 전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요청한 것은 그가 중남미 외교단장직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2년 이상 한국에서 근무한 최장기 대사다. 그래서 그는 전체 주한 외교사절을 대표하는 외교단장이기도 하다.
“저는 여기서 세 가지 단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모든 주한 외국공관을 대표하는 외교단장을 비롯해 중남미 외교단장과 중미 외교단장입니다.”
외교관의 서열을 따질 때 통상 같은 직급은 부임 기간으로 정하기 때문에 운고 대사가 다른 모든 주한외국 대사들보다 서열이 앞서 단장을 맡았다. 운고 대사는 무려 12년을 한국서 근무한 미구엘 두란 콜롬비아 대사가 본국으로 돌아간 2004년 3월 두란 대사의 후임으로 외교단장이 됐다.
그는 “벌써 12년하고 1개월을 한국에서 근무해 전 외교단장인 두란 대사의 기록을 앞질렀다”며 “최장기 주한 외교단장이 되었다”고 웃었다.
그러나 운고 대사는 주한 외교단장의 임무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외국 대사관의 숫자가 갈수록 늘어나 이제 90개를 넘어섰고, 한국이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만큼 외교단장이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
“단장 자격으로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너무 많습니다. 때로는 하루에도 네다섯 개의 행사에 가야 합니다. 한 곳에서 겨우 15분간 머물렀다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는 “대사들이 파티나 즐기며 노는 줄 알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며 “매우 힘든 직업”임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모든 외교행사에 대표로서 다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하루 일정을 다 소화하고 집에 오면 밤 11시가 넘어 녹초가 되기 일쑤라고 한다. 그는 “그렇다고 11시에 바로 잠자리에 들지도 못한다”며 “한국시간 밤 11시는 엘살바도르 아침 8시로 그때부터 필요한 전화업무를 시작해 새벽 1시까지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운고 대사는 그러나 지난 12년간의 한국생활을 가장 행복한 시기로 규정하면서 한국의 주요 역사를 현장에서 목격한 게 매우 자랑스럽다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한 덩어리가 된 금 모으기 운동 등 한국민들의 위기극복 노력을 시작으로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2003년 시작된 6자회담, 2005년 청계천 복원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줄줄 읊었다.
그는 끝으로 엘살바도르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 하나를 꼭 바로잡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것은 엘살바도르에서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면 총살된다는 소문(?)이다. 운고 대사는 “일부 언론에서 잘못 보도하면서 한국사회에 퍼진 것 같은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엘살바도르의 음주단속 처벌 규정은 한국에 비하면 매우 약하다”고 강조했다.
윤원섭 코리아타임스 기자 yoonwonsup@korea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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