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수평적 정권교체 10년, 그리고 대선의 해를 맞아 학계에서 이른바 '87년 체제'의 평가와 극복 방안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87년 체제'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형성돼 현재에 이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그 개념 정의 자체가 1차적 논쟁의 대상인 데서 알 수 있듯이, 구체적인 쓰임새는 학자마다 다르다. 따라서 '87년 체제'로 지칭되는 현 사회의 문제점 진단과 극복 방안에서도 뚜렷한 시각차가 드러난다.
'87년 이후 정당체제' '87년 노동체제' 등 한정된 의미로 쓰이던 '체제' 규정이 총괄적 지칭 및 논쟁으로 발전한 것은 2004년 탄핵사태 이후 불거진 개헌 논의와 맞물리면서부터.
창비는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공동으로 2005년 여름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라는 심포지엄을 열고 계간 <창작과 비평> 에 연달아 특집을 마련, 본격적인 논쟁에 불을 붙였다. 창작과>
앞서 역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2002)를 통해 '민주화 이후' 정치의 실패를 질타했던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개헌 논의 중심의 '87년 체제' 극복론을 정면 비판했다.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87년 체제 탓으로 돌리고 개헌에서 해법을 찾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 민주화>
최 교수의 지적은 "참여정부는 민주정부로서 실패했다"는 날선 비판으로 이어져 참여정부측과의 갈등은 물론, 진보 진영 내 격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다른 각도에서 '87년 체제' 규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체제(regime)란 경제와 정치의 조응 관계를 의미하며 물적 토대인 경제체제에 주목할 때 '87년 체제'보다는 '97년 체제'라는 개념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보수세력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기존 진보세력의 반(反)세계화를 넘어 '지속 가능한 세계화'를 제안한다.
개념조차 엇갈리는 '87년 체제' 논쟁은 소모적인 말싸움을 낳기도 하지만, 학계에서 뒤늦게나마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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