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 지음 / 현대문학 발행ㆍ268쪽ㆍ9,000원 결혼 30주년에 집나간 아내…아파트만 달랑 남은 명퇴자…이동하, 10년만의 소설집
소설가 이동하(65)씨가 <우렁각시는 알까?> 를 펴냈다. 10년만의 새 소설집이다. 지구적 신자유주의가 지금 한국에 어떤 상처로 남아 있나를 연민과 염려의 시선으로 따라 들어간 10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우렁각시는>
IMF 금융 환란, 명예 퇴직이라는 현실이 한국의 보통 사람들을 어느날 갑자기 덮쳤다. 주인공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어디서 누구에게 심장을 물어 뜯길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교감 선생인 화자에게 우리 사회는 ‘남의 살점을 물어뜯고 싶은 욕망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치열하고도 살벌한 이미지들’로 채색돼 있다. 살을 맞대고 살아 온 아내가 결혼 삼십주년을 기다렸다는 듯 집을 나갔고, 나는 10차로 도로를 유유히 횡단하는 화물차 운전사의 모습에서 뜻 모를 위안을 받는다.(<앙앙불락> ) 앙앙불락>
결혼 후 열한 번 이사한 끝에 48평 짜리 아파트를 얻은 명퇴자. 평생을 가난에 치여 허덕였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완전히 거덜나 ‘대로변에 알몸으로 누더기 이불을 두르고 누워 있는 몰골’이 지금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자전거 타고 가다 개골창에 꼬나 박혀’ 죽은 가난뱅이 아버지의 환영, 지금껏 이뤄놓은 것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곧 달아날 것 같은 공포감은 이 시대 기성 남성들의 존재론적 불안감을 반영한다.(<남루한 꿈> ). 한밤중 괴한들에게 납치돼 목만 남긴 채 구덩이에 파묻힌 마흔 둘의 여자 이야기는 ‘시계 제로의 세상’ 속, 부조리한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놓여 있는 현재의 한국인들을 연민의 눈으로 보고 있다.( <담배 한 대> ) 담배> 남루한>
소설집의 도입부는 어른들을 위한 우화다. 굴속에서 조용히 살아 가던 거지와 젊은 승려,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의탁해 온 젊은 아낙 등 세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육담 섞어 펼치는 <너무 심심하고 허무한> . 성(聖)과 속(俗)이 성(性)을 두고 한바탕 소동을 치르다 부처의 원융함을 만나 편안히 공존한다는 이 작품은 육순을 넘긴 작가의 입담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과시한다. 너무>
평론가 박철화씨는 “함께 고단한 삶을 살아 온 동세대에게 바치는 헌사”라며 “생에 대한 달관과 연민의 시선이 두드러진다”고 수록작을 평했다.
늦출 줄 모르는 창작열 만큼이나 반가운 것은 우리 말에 대한, 그의 가열찬 사랑이다. 젊은 작가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언어의 맛이 소설집 전체를 관류한다. 독자들은 거기서 월척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무람없다’ ‘자울자울’ ‘히마대기’ ‘모질스럽다’ ‘행티’ ‘꺼들리다’ ‘오꼼하다’ ‘홍거시’ ‘뱃구레’ ‘뙤창’ ‘스적스적’ 같은 정겨운 토박이 말이 적소에서 빛을 발하며 향연을 펼친다. ‘유명짜하다’ ‘생뚱맞다’ 등 신조어들이 나란히 등장하는 이 소설집은 연령의 벽을 뛰어 넘는, 지금 우리말을 돌아보게 한다. 현대문학 발행·268쪽·9,000원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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