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에게 위증과 사법방해죄로 징역 30개월을 선고했다는 뉴스가 며칠 전 크게 보도됐다. 리비가 법으로 공개가 금지된 CIA 비밀요원의 신원을 언론에 흘린 이른바 '리크게이트'(leakgate) 수사와 관련, FBI와 연방 대배심에서 거짓 증언한 것을 엄하게 단죄했다는 내용이다.
미국과 우리 언론은 법원이 "고위 공직자의 거짓말은 중죄"라고 지적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게이트에 연루된 다른 공직자들은 '진실 서약'을 한 뒤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처벌 받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공직자의 진실성에 관한 엄격한 공직윤리를 확인한 데 판결의 의미가 있는 듯 들린다. 그러나 영국 BBC 방송 등 객관적 언론의 시각은 다르다.
리비 재판의 중요성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백악관이 추악한 음모를 꾸민 사실이 드러난 데 있다는 것이다.
BBC는 리비의 유죄 여부는 핵심이 아니라고 논평하면서, 레이건 행정부의 이란-콘트라 비밀공작 스캔들을 수사한 로렌스 월시 특별검사의 말을 인용했다. "정부의 일탈행위는 제 때 알리고 규명해야 방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 BBC는 게이트의 발단이 된 조지프 윌슨 전 대사를 리비보다 부각시켰다. 윌슨은 이라크 주재 대리대사를 지낸 중동ㆍ아프리카 전문가로, 2002년 CIA의 의뢰로 이라크가 니제르에서 핵물질을 입수한 의혹을 조사했다. 그는 니제르 고위층을 두루 접촉한 뒤 의혹이 근거 없다는 비밀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듬해 국정연설 등에서 이를 사실인양 강조,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자 윌슨은 언론 기고를 통해 전쟁 명분이 거짓이라고 폭로, 부시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 리크게이트는 윌슨의 신뢰성을 깎아 내리기 위한 음해 공작이었다. 리비 전 실장 등은 윌슨의 부인이 고위 CIA 요원이란 사실을 로버트 노박과 밥 우드워드 등 보수 언론인들에게 흘렸다.
애초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의혹에 부정적인 CIA의 간부와 특수관계인 윌슨의 객관성을 믿을 수 없다는 인상을 여론에 심으려는 의도였다.
부시 대통령은 위법적인 CIA 요원 신원 공개를 사전에 사면 조치했고, 리비를 제외한 다른 관리들은 수사과정에서 모두 잘못을 인정, 사법처리를 면했다. 이에 따라 유독 리비가 위증으로 처벌을 자초한 것도 체니 부통령 등 윗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양 노릇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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