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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헌번재판소 - 2등 사법부에서 막강 사법권력으로 憲裁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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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헌번재판소 - 2등 사법부에서 막강 사법권력으로 憲裁의 변신

입력
2007.06.0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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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을 맞아 뜨거운 공방의 대상으로 떠오른 기관 가운데 하나는 헌법재판소다. 1987년 헌법을 통해 설립이 결정된 이후, 한때 헌재는 대법원과 힘겨루기에서 밀려 ‘2등 사법부’에 머물렀다.

그러나 참여정부에 들어 정치권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모조리 헌재로 향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특히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과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을 거치며 헌재는 막강한 사법권력으로 부상했다.

이와 함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재의 위상을 둘러싼 논란도 커졌다. 헌재가 정치의 모든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는 ‘정치의 사법화론’, 진보진영의 ‘헌재 철폐론’에 이르기까지 논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 6ㆍ10 항쟁의 산물, 헌법재판소

87년 9차 헌법개정을 통해 도입된 헌재는 헌정사상 두 번째였다. 최초의 헌재는 60년 4ㆍ19 혁명으로 이뤄진 3차 헌법 개정 때 도입됐지만 곧 일어난 5ㆍ16 쿠데타로 인해 구성도 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87년 헌법 개정 논의 때 헌재 독립기구화는 대세가 아니었다. 여당이었던 민정당도 위헌법률심판, 정당해산심판 등 권한을 대법원에 부여하는 개정 초안을 마련했었다. “사법부 강화가 곧 민주화”라는 국민의 뜻이 있었고 야당들도 이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의 헌법개정 초안 보고를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를 반대했다. 그는 “만일 대법원이 정당해산을 명령하게 되면 대학생들이 시위를 할 텐데 대법원에 화염병이 날아들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반대 배경에는 대법원의 소극적 입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법원은 위헌법률심판권을 갖고 있던 71년 정부의 국가배상법을 위헌결정 했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분노를 사, 73년 대법관 9명이 연임되지 못한 채 옷을 벗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민정당 헌법개정소위 위원장이었던 현경대 전 의원은 “대법원은 위헌법률심판 같은 권한을 다시 가져가는 것에 불안감이 있었고, 대법원측이 이런 입장을 전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결국 여당은 입장을 바꿔 헌재 독립설치를 주장했고, 여야 합의를 통해 독립설치가 결정됐다.

■ '국민 기본권'의 수호기관

헌재는 헌법상 규정돼 있는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률 등을 심판,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국민기본권을 해치는 의회, 행정부 권력을 견제하는 기관인 셈이다.

초기 헌재의 대표적인 결정은 94년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토지초과이득세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었다. 96년 영화 상영 전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규정한 영화법 위헌 결정, 97년 동성동본 결혼금지를 명한 민법 위헌 결정을 내렸다.

2005년에는 호주제, 아버지의 성과 본적을 따르게 한 민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물론 헌재는 간통죄, 사형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여전히 합헌 입장을 보여 “보수적 결정으로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한편 참여정부 들어 헌재는 2004년 5월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기각, 10월 신행정수도특별법 헌법 소원 사건 위헌 결정을 내리며 위상을 새로 새웠다. 특히 두 사건은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헌재가 정치적 쟁점에 처음으로 적극적 의견 개진을 한 것으로, 헌재가 가진 권한의 파괴력을 극명히 보여줬다.

■ 헌재 도입 20년 성공인가?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저서에서 “헌재는 우리나라에서 국제경쟁력을 지닌 유일한 헌법기관”이라고 극찬했다. 헌재연구관 출신인 황도수 변호사 역시 “대한민국 민주화에 이만큼 기여한 헌법조직이 또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들의 평가가 과도할지는 모르나 헌재가 국민 기본권 보호의 선두에 서 있었다는데 이견은 없다. 87년 이전에도 대법원 또는 헌법위원회라는 조직에 위헌법률 심판권이 부여돼 있었지만 실제 심판이 이뤄진 사례는 10건 미만이었다.

위헌적인 법률로 기본권을 침해 받은 국민이 호소할 곳은 없었던 것이다. 헌재가 설치된 이후 접수된 누계사건이 90년 826건, 95년 826건, 2000년 6329건, 2006년 1만3,945건으로 급증한 것이 헌재의 역할을 방증한다.

남복현 호원대 법행정학부 교수는 “헌재는 과거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국민 기본권에 대해 진보적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며 “긴급조치, 유신헌법에 기반해 판결을 한 과거가 있는 대법원에 헌재 기능을 맡겼다면 지금 같은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 '선출되지 않은 권력' 논란

그러나 헌재는 지금 ‘과도한 권력’논란에 쌓여 있다.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헌재가 ‘관습헌법’을 들어 위헌 결정을 내리자 여당에서는 ‘사법쿠데타’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더욱이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폐지 등 정치권에서 해결되지 못한 모든 문제들이 헌재로 쏠리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가중되면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좌우한다”는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이에 남 교수는 “의회와 대통령은 선출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권력을 행사하지만 여기에도 불신은 생긴다”며 “이때 헌재는 국민이 만든 헌법에 따라 기능적으로 판단하는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사법화 논란에 대해서는 정치권력의 내부 갈등 심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평가가 많다. 때문에 ‘사법의 정치화’을 경계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양건 한양대 법대 교수는 “헌재는 국민적 공감을 최우선 가치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대법원과 헌재의 통합?

대법원과 헌재를 통합해야 하느냐는 해묵는 논쟁이다. 서성 전 대법관 뿐 아니라 조대현 헌재재판관조차 “헌재와 대법원의 기능을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었다.

양 기관 통합론의 기본 논리는 이중화된 사법기관을 합쳐 단일한 최고 사법기관을 만들자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헌재 역시 대법원 판례에 대한 위헌심판권한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법적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론도 있다. 황도수 변호사는 “민ㆍ형사 재판이 중심인 대법원에 공법을 심판하는 헌재가 통합된다면 지금처럼 헌재 기능이 활성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부에서는 “헌재와 대법원이 합쳐지면 막강한 사법권력이 생기는데 과연 그것을 국회가 용인하겠느냐”는 현실적 우려도 나온다.

■ 20년된 헌법 리모델링? "87년 헌법은 정치 민주화만 역점"

1987년 9차 개정 헌법에 대한 개헌 주장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론'은 수많은 개헌론의 일부에 불과하다.

87년 헌법은 민주화 운동을 통해 탄생했다는데 의미가 크다. 60년 4ㆍ19 혁명 직후의 3차 개정 헌법은 61년 5ㆍ16 군사쿠데타로 단명하고 말았다.

87년 헌법을 마련할 때 정치권이 주력한 것은 독재정권 출현을 막고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을 갖추는 것이었다.

때문에 개정 헌법은 대통령 연임 가능 규정을 전면 배제, 대통령 직선제ㆍ5년 단임제를 명시했다. 또 헌법재판소 제도로 사법감시를 강화했고, 구속적부심을 전면 도입해 사법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가능성도 줄였다.

국정감사제도 도입으로 의회의 감시 기능도 높였다. 국민의 기본권 향상을 위해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과 최저임금제 명시, 언론ㆍ출판 등 표현 자유의 대폭 확대 등도 중요하다. 헌법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명시, 앞선 2번의 군사 쿠데타의 아픈 경험도 경계했다.

그러나 87년 헌법은 오로지 정치체제 민주화에만 역점을 둬 급하게 개정하다 보니 부실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시기 불일치로 인한 비효율성 문제. 노 대통령은 '4년 연임제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했지만 국민적 공감대가 없어 역풍을 맞았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처럼 5년 단임제는 국정의 효율성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이밖에도 "87년 이후 20년이나 흐른 만큼 변화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환경에 맞춰 헌법을 리모델링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법학ㆍ철학ㆍ여성학 전문가들이 모인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헌법 다시보기'라는 책을 통해 시민사회의 의견이 반영된 헌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헌법의 주체를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바꾸고 평화권, 생명권, 인격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치권에서는 "북한을 흡수 붕괴의 대상이 아닌 평화로운 공존대상으로 설정하기 위해 영토조항을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가 아닌 다르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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