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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간의 문화사' 시계나 달력 없이 살 수 있다면

입력
2007.06.0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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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애브니 지음ㆍ최광열 옮김 / 북로드 발행ㆍ576쪽ㆍ2만7,000원

중앙아프리카의 누에르족은 자연의 변화에 따른 인간 활동을 기준으로 한 생태적 시간을 활용한다. 자연의 기본 리듬에 따라 이주를 하고, 결혼식을 치르고, 식량 생산 방법을 결정한다.

건기에는 외곽의 야영지에서 사냥과 고기잡이를 하고, 건기가 끝날 무렵에는 덤불을 태워 농사를 준비한다. 우기 때 강물이 넘치면 고지대의 마을에서 옥수수와 기장을 재배하는 식이다. 어떤 시간을 가리킬 때는 그 때 일어나는 두드러진 활동을 언급한다.

이들에게는 시간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다. 같은 1시간이라도 활동을 많이 하는 건기냐, 지루한 우기냐에 따라 가치를 달리 매긴다.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을 따지는 누에르족의 이런 생태적 시간은 서양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인간 중심적 시간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12장의 달력에 의해 통제된다. 달력 속 숫자들을 당연한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누에르족의 예에서 보듯 시간이란 개념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그레고리력에 따르면 올해는 2007년이지만, 프랑스 혁명 달력으로는 215년, 고대 로마 달력으로는 2760년, 바빌로니아 달력으로는 2756년, 고대 이집트 달력으로는 6243년이다.

미국 콜게이트 대학의 천문학ㆍ인류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시간에 대한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저자는 우리가 시간을 기록하고 생각하는 방식은 셀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선택의 결과라고 말한다.

예수를 비롯해 카이사르, 다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달력의 구성에 일조했고, 르네상스의 자유주의 정신, 중세 상인계층의 성장, 진화론 같은 대규모 사회 운동도 시간에 대한 관념에 영향을 미쳤다. 학문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특히 종교가 오늘날의 달력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책은 비(非)서양의 시간으로도 눈길을 돌린다. 누에르족을 비롯한 부족사회와 고대 잉카ㆍ아스텍 문명, 고대 중국의 각기 다른 시간 계산과 기록 방식을 조명하면서 그 바탕이 된 각 사회의 세계관과 역사 인식 방법까지 살핀다.

절대적이고 무한한 시간을 체계화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전 역사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돼 왔다. 저자는 그러나 “시간을 일정한 패턴 속에 넣으려는 기계적 방식이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동떨어져서 시간을 이해하는 사고 방식을 낳고 말았다”며 단순한 숫자로 전락한 현대인의 시간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한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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