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강자 신세계에게 외환위기는 오히려 기회였다. 선택과 집중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포인트는 할인점 사업. 외환위기는 이마트가 할인점 업계 1위를 굳히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경쟁업체는 이 시기 부도로 쓰러지고 긴축경영으로 왜소해졌지만 신세계는 몸집을 불렸다.
프라이스클럽(현 코스트코홀세일) 사업을 매각해 마련한 1억불을 비롯, 카드사업 등 비효율부문을 과감히 정리해 확보한 자금으로 전국 주요상권의 할인점 부지를 대거 사들였다.
심지어 백화점을 짓기 위해 샀던 산본 전주 해운대 진주 등지의 핵심부지 역시 할인점으로 바꾸었다. 주요 할인점 부지 20~30개를 단기간에 확보해 자산효율을 높였다. 선택만큼 집중 능력도 탁월했던 셈이다.
조직의 역량을 한곳에 모아 벌이는 싸움에 당해낼 상대가 없었다. 외환위기를 빌미로 한국진출에 나섰던 월마트와 까르푸는 이마트의 선견지명 앞에 맥을 쓰지 못했고, 결국 신세계는 지난해 월마트 코리아를 인수해 국내 할인점 시장을 평정했다. 이마트는 올 하반기에도 국내와 중국에 10개 이상의 점포를 열어 연말엔 국내외 120개 점포망을 갖추게 된다.
신세계가 자랑하는 '윤리경영' 역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장착한 핵심 무기다. 신세계는 1999년 윤리경영을 바탕으로 한 신경영이념 선포식과 아울러 국내 최초의 기업윤리 전담부서 '기업윤리실천사무국'을 신설해 한발 앞서갔다.
'윤리경영 전도사'로 불리는 구학서 부회장의 경영능력은 눈부신 실적이 증명했다. 외환위기 당시 1조5,000억원이던 연 매출은 지난해 9조5,533억원을 돌파하며 6배가 넘는 신장률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10년새 49배, 주가는 2만원대에서 60만원대로 30배나 수직 성장했다. 덕분에 신세계는 81년 후발주자 롯데에게 내줬던 유통업계 1위 자리를 20여년 만에 되찾아와 명실상부한 유통황제로 다시 등극했다.
환란 이후 10년을 최고의 풍작으로 기록한 신세계는 올해를 기점으로 다가올 10년 역시 착실히 준비하고있다. 본점 프로젝트 마무리(2월), 수도권 남부 핵심상권 진출을 알리는 죽전점 오픈(3월), 새로운 명품 아웃렛 사업인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개장(6월)에 이어 부산 센텀시티, 한류우드 등 초대형 복합쇼핑몰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온라인 쇼핑몰 부문도 전략적 진출을 추진하고 있고 수익성을 전제로 한 인수합병도 적극적으로 나설 참이다. 위기를 기회로 살린 유통황제의 진군은 거침없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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