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은 국토 재건의 의지가 충만했던 1954년 당시 민간 최초로 철강 공장을 건설, 반세기 동안 오직 철강 한 분야에만 매진해 온 업체다. ‘철강 한 우물’ 경영만을 고집해 온 동국제강도 외환위기에서 만큼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히려 다른 업종의 기업보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철강 산업의 특성상 원자재는 해외 시장에서, 판매는 내수 시장에서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외환위기는 말 그대로 동국제강으로서는 혹독한 시기였다. 더구나 1997년은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해 1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마무리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때문에 신규 공장의 가동을 위해선 더 많은 원자재가 필요했다. 하지만 경영 자금의 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내수 시장은 급격하게 위축, 원자재 구입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은 더해갔다.
그러나 동국제강에 포기란 없었다. 부산제강소 폐쇄에 따른 부지와 설비 매각으로 IMF 폭풍을 피해 간 동국제강은 대대적인 성장 전략을 구사하며 공격 경영을 펼쳐 나갔다. 전세계로 뛰어나가 새로운 수출선을 개발했고,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외환비용으로 경상 적자를 감당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럴수록 임직원 모두는 허리를 졸라맸고 막 지은 공장 정상화에 매진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나 신규 사업 축소까지도 나올 법 했지만 동국제강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이미 90년대 초ㆍ중반 조직의 슬림화와 사업 방향을 확실히 세워 놓았고, 무엇보다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과 결집이 있어서였다.
노동조합도 자발적인 증산 운동과 임금 동결 선언 등으로 화답했다. 노조는 지금까지도 무분규 교섭타결신화를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2001년부터 모든 경영 지표가 개선되는 등 동국제강의 믿음은 서서히 현실적인 성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98년 1조3,9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지난해에 3조400억원으로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98년 간신히 적자를 면했던 수준에서 지난해는 2,530억원까지 뛰어 올랐다.
특히 2000년 9월에 취임, 사실상 동국제강의 제2의 창업을 이끌고 있는 장세주 회장은 철강 산업을 중심으로 유니온스틸과 국제종합기계 동국통운 등 수직 계열화된 8개 계열 기업들의 역량을 집중시키며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시켜 나가고 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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