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직업인지라 똑 같은 표현을 해도 어떻게 하면 쉽게, 그럴 듯하게 할 수 있을까 고심하는 경우가 많다. 국립국어원 발행 <표준국어대사전> 에 표제어로 당당히 오른 단어라도 어감이 너무 속되거나 하면 피한다.'거시기'와 같은 절묘한 표준어를 안타깝게도 사용하지 못하거나 굳이 따옴표로 묶어 쓰는 일도 그래서 생긴다. 표준국어대사전>
그렇다고 언론인들이 사석에서 하는 말까지 모범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취재원들과 드잡이하는 일이 많다 보니 입이 거친 편이다. 하루는 어린 딸이 험한 말을 하기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야단을 쳐서 심히 울게 만들었다.
■ 그런데 나중에 아내한테 들으니 딸아이는 바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배웠다는 것이다. 어찌나 난감하던지…. 요즘은 참 말이 험한 세상이 됐다. 예전 어른들은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썼다.
제자인 안연이 '인간이 어떻게 하면 어질고 자애로운 성품을 가질 수 있을까'를 묻자 공자가 한 답변 가운데 한 구절이다. 예(禮)란 예절, 이치, 도리, 도덕, 그때그때의 상황에 부합하는 바 등을 말하는 것이니 적절치 않은 말은 꺼내지 말라는 얘기다. 예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는 줄 모르느냐?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오는데,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복음 15장) 지난 2일 지지자들 앞에서 무려 4시간 가까이 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은 그야말로 "말 폭탄"이었다. 어찌 보면 가관이고 어찌 보면 노무현식 화법의 결정판이었다.
■ 누구는 대통령의 정신 건강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노림수가 있는 계산된 발언이라고 분석하지만 "당시 우리 언론과 우리 정치, 우리 국민이 저를 죽사발 만들었습니다" "항만 노무 공급 체계는 백년이 넘는 꼴통 과제" "그놈의 헌법이 토론을 못하게 되어 있으니까 단념해야죠"같은 발언을 보면 그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는 분명하다.
가장이 말이 험하면 자녀들이 나쁜 영향을 받는다. 대통령의 말이 험해지면 여기저기서 악순환이 일어나고,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부디 다음 대통령은 말만이라도 정상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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