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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이건 어때요?] '화장실 개방 확대' 제안한 정을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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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이건 어때요?] '화장실 개방 확대' 제안한 정을호씨

입력
2007.06.0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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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을 위해 건물 화장실을 개방하면 어떨까요.”

시민운동가 정을호(36)씨는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벌인 ‘화장실 수색작전’을 생각하면 진땀이 흐른다. 네 살 배기 딸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손을 잡아당길 때만 해도 여유로웠다.

그러나 “대표적 관광 거리인데 천천히 걷다 보면 나오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공중화장실을 찾았지만 안내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관광안내소에 물어 100원짜리 유료화장실을 알아냈으나 고장이었다. 일부 건물에서 시민들에게 화장실을 개방한다는 얘길 들었지만 도대체 푯말이 눈에 띄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몇몇 가게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자 “볼일 좀 보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 곤란하다”며 내몰았다. 화장실 몇 군데는 굳게 잠겨 있었다.

15분 동안 돌아다녔는데 허사였다. 아이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그는 간신히 문이 열린 화장실을 발견하고 아이를 안고 뛰어들어 갔다.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면 생고생 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 살 것 같다는 아이를 보며 그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시내 대형 건물은 대부분 화장실을 개방했다. 그러나 아직도 다방이나 술집, 당구장 등 다중이용건물은 대부분 자물쇠를 굳게 잠근 상태다.

진보평화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는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 기획팀장인 정씨는 2004년 여름 방문했던 중국 베이징(北京)의 화장실 얘기를 꺼냈다.

베이징은 200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참 위생시설 등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도심 한복판 빌딩 내 화장실을 대부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는 “서울보다 위생 환경이 후진적이라고 알고 있던 베이징도 관광객 유치 등을 위해 도시 전체가 노력하고 있다”며 “휴일 나들이객이나 해외 관광객이 많은 서울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많으면 경쟁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다중이용건물에서 잠재 고객인 시민들에게 화장실을 개방하면 편리하게 외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건물 화장실 개방으로 더 드는 물값 휴지값 청소비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건물주에게 일부 보조하면 훌륭한 ‘민관협력 공공복지모델’이 될 수 있다.

정씨는 6일“화장실 개방에 참여한 건물에는 ‘시민을 위한 유쾌한 화장실’이라는 예쁜 표지판을 붙여 건물 이미지를 높이고 시민들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 '개방 화장실' 지정되면 지자체서 휴지값 등 지원

누구라도 한번쯤은 공중화장실을 찾아 발을 동동 굴렸던 경험이 있다.

민간 건물이라도 화장실은 공익 차원에서 개방해 둘 순 없을까. 한국일보와 희망제작소가 함께 알아봤다.

현재 서울시 공중화장실은 모두 515곳이다. 공중화장실이란 공중이용 제공 자체를 목적으로 설치된 화장실을 말한다.

그러나 번화가를 포함한 상업지역과 통행이 빈번한 주요 도로변 등 사람이 많이 몰리는 지역에는 공중화장실이 부족한 편이다.

관련 법규에 따르면 이 같은 공중화장실 말고도 다른 화장실을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은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이 민간 법인이나 개인소유 시설물의 소유ㆍ관리자와 협의를 거쳐 건물 내 화장실을 ‘개방화장실’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건물 입구 등에 일반 시민들이 이를 알 수 있는 표지를 달도록 돼 있다.

실제 각 지방자치단체는 시민편의를 위해 개방화장실을 확대하려고 애쓰고 있다. 서울시는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2001년부터 꾸준히 시행해 온 결과 현재 총 778개의 개방화장실이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의 건물주는 화장실 개방을 꺼리고 있어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지자체와의 협의를 거쳐 개방화장실로 지정되면 분기별로 일정한 예산을 지원받는다. 현재 53곳과 협약식을 맺은 종로구의 경우 정시개방(영업시간 내에만 개방)엔 분기별로 6만원, 24시간 개방엔 7만, 8만원 상당의 화장지 등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담당 공무원들은 “개방화장실을 단순히 늘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유지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 위생과 관계자는 “민간 개방화장실은 매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며 “그러나 개방화장실 설치에 기꺼이 참여하다가도 시민들이 깨끗이 사용하지 않으면 폐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 청소행정과 관계자도 “개방화장실이 더욱 늘어나려면 빌딩 소유주들의 공공적인 마인드와 더불어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방화장실 표지가 너무 눈에 안 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는 건물 입구에 ‘화장실’이라는 표시만 작게 붙어 있는 상태다.

희망제작소 정기연 연구원은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는 표시를 좀더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며 “공중화장실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 빌딩 내에 있는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활성화시키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 이런 화장실 제안도 있습니다

“여자화장실에도 남자 아이를 위한 유아용 변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하는 엄마’ 조혜원(37)씨는 최근 휴일을 맞아 외아들 동형(5)이와 서울 마포구 상암 월드컵경기장 하늘공원으로 ‘둘만의 데이트’를 나섰다가 뜻하지 않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어린이집에 들어간 후 부쩍 ‘남자’임을 내세우는 아들이 엄마와 함께 여자화장실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남자화장실에 혼자 보내기도 내키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용변을 잘 볼지 걱정이 됐어요.”

아들이 여자화장실을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불편함이다. 아빠에게 남성용 변기사용을 배운 아이가 여성용 변기를 사용하려면 무거운 변기뚜껑을 열고 까치발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씨는 “아이들이 즐겨 찾는 가족공원에라도 남자 아이를 위한 유아용 소변기를 설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활용패션브랜드 ‘메아리’ 기획팀장인 조씨는 “어른 좌변기에 유아용 탈부착 변기뚜껑을 달거나 받침대 등을 구비해놓으면 아이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기 훨씬 편리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하철 개찰구 밖에도 화장실을 설치해주세요.”

최근 충남 서산에서 사업 때문에 서울에 온 윤철수(53)씨는 지하철 개찰구 밖에서 화장실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맸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부터 시작된 배앓이는 목적지인 지하철 3호선 종로 3가역에 도착하자 더 이상 참기 힘들 정도였다.

급한 마음에 표를 내고 개찰구 밖으로 무작정 뛰어나갔지만 화장실 표지판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이미 표를 내고 나와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복잡한 지하철 통로에서 하늘이 노랗게 변하더군요.”

참다 못한 윤씨가 개찰구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니 “무슨 일이냐”며 공익근무요원이 가로막았다.

사정을 얘기하자 역무원은 "원칙적으론 안되지만 개찰기계 옆 비상용 철문으로 들어가라"며 잠금 장치를 풀어줬다.

윤씨는 6일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 이런 제안을 했다.

"화장실이 급한 것도 일종의 응급 상황인 만큼 비상용 철문을 쓸 수 있게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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