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인 1995년, 홍재형 경제부총리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신경제 장기구상'이란 거창한 보고를 했다. 골자는 2001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고, 2010년에는 영국을 제치고 세계 7대 경제대국이 된다는 장밋빛 전망이었다.
구상 자체는 외환위기로 물거품이 됐지만 요란한 홍보 덕에 강한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양대 포인트 중 하나였던 국민소득 2만달러는 선진국에 낄 수 있는 커트라인처럼 각인됐고, G8(러시아 97년 가입. 당시엔 G7) 반열로 도약할 수 있다는 대목 역시 성공한 경제의 상징물로 부상했다.
G8 정상회담이 6일부터 독일에서 열린다. G8은 8개국 모임을 뜻하는 'Group of 8'의 줄인 말이지만 국내에선 선진 8개국 회담으로, 유독 '선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바람에 'G'가 '위대한'을 의미하는 'Great'의 약자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G8로 상징되는 선진국을 향한 갈망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G8 수준과는 거리가 있는만큼 먼저 선진국인지 따져볼 일이다. 선진국이란 개념이 모호해 딱 떨어지는 기준은 없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얼기설기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있다. 국민소득, 인적개발지수, 국제기관의 평가 등 3개 잣대를 모두 충족하면 선진국으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국제기관의 평가에선 한국은 선진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진국으로 분류한 29개국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시비를 건다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유엔의 인적개발지수(HDI)에서도 분명 선진국이다. 수명 지식 생활수준 등 세가지 차원에서 평가해 0.8이상이면 고(高) HDI 국가로 본다. 한국은 2006년 현재 0.912로 115개국 중 26위다.
세 번째 고개는 국민소득이다. 워낙 들쭉날쭉하지만 그래도 인정을 받는 잣대는 1만726달러 이상을 고소득국으로 나눈 세계은행(WB)의 분류법이다.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국민소득이 1만8,372달러로 WB 기준을 2배 가까이 상회한다.
이로써 한국은 선진국 잣대 3개를 모두 훌쩍 넘었다. 수긍하기는 힘들지만 먼 것만 같던 선진국이 시나브로 한국 속으로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러면 선진국의 진정한 척도라며 그토록 염원했던 2만달러는 뭐였을까? 나름의 사연도 있다. 95년 당시 G7의 평균 국민소득은 2만4,273달러였고, 타도의 표적으로 상정했던 영국이 한해 전인 94년 처음으로 2만달러를 넘은 점을 감안한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WB에 따르면 영국은 국민소득이 껑충 늘어나 2005년 현재 3만7,600달러로 세계 12위이다. 반면 95년 1만달러를 넘었던 한국은 1만5,830달러로 49위에 머물렀다. 외환위기로 인한 뒷걸음질을 감안해도 신통치 않은 실적이다. 이런 점에선 12년 사이에 선진국이 오히려 더 멀어진 셈이다.
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선진국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비책이 있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용이냐, 지렁이냐는 중대 기로에 선 한국경제에 대통령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충분히 목격해왔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시원하게 열어 줄 후보를 찾아야 할 때다.
김경철 국제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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