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언론 수준은 참담합니다. 이제 만 18세인 제가 봐도 그 현실은 너무도…."
지난달 서울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으로부터 맹랑한 이메일을 받았다. 기자가 쓴 일본 관련 기사의 제목이 "어이가 없어" 항의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얼치기 지식을 과시하며 기본적인 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분통을 터뜨린 그 학생은 우리 언론의 수준과 언론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청을 높이는 등 거창하게 논리를 비약시켰다.
● 위험수위-심각한 언론 불신
학생에게 정성껏 답장을 썼다. 잘못된 언론과 정치권의 행태를 그대로 배운 것 같은 문제제기 방식에서 충격과 절망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답장은"나도 지금 우리나라 언론의 모습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학생이 그런 점을 차분하고 예의 바르게, 또 논리적으로 지적해 주었더라면 나는 크게 부끄러워했을 것이고, 또한 기뻐했을 것입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기자실 통폐합 사태를 지켜보며 문득 그 학생의 메일이 생각났다. 경위야 어찌 됐건 치기어린 학생이나 한 나라 대통령의 언론 인식이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언론불신이 위험선을 넘어섰다는 것을 절감했다. 대통령의 참담한 느낌은 아마도 수백 배 수천 배는 강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우리의 언론상황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20% 공감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언론인, 언론을 사물화하는 언론사 사주 등 잘못된 언론 군상이 활개치고 있는 우리 언론계는 본질에서 이탈하며 생명 같은 신뢰를 잃고 있다.
여기에 잘못된 언론을 준엄하게 심판하지 못하는 수용자와 언론을 사리사욕에 이용하려는 정치가 등 총체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작용해 우리 언론을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다. 멋모르는 고교생까지 걱정하는 우리 언론의 현실은 곧 지금 우리사회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홍보처가 설명한 기자실통폐합 조치까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대통령의 참담한 심정이나 오기로 밀어붙일 수 있는 영역을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속 뜻이 어떠하건, 어떤 명분을 내세우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시도는 감당할 수 없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는 이 같은 혼란스런 국면이 분출하고 있는 에너지를 우리 언론의 실상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동력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금이야말로 참 언론의 중요성을 새롭게 확인하는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 기자실 통폐합은 언론자유 침해
최근 청와대에서 메일이 자주 오고 있다. 그 때마다 이런 답장을 보내고 싶지만 참고 있다. "저도 지금 우리나라 언론의 모습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대통령께서 좀더 사려 깊게, 좀더 현명하게 문제 제기를 해주셨으면 저는 무기력한 기자로서 매우 부끄러웠을 것이고, 또한 매우 기뻤을 것입니다."
도쿄 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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