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제국·인종·성차별주의 사슬에 /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발행ㆍ411쪽ㆍ1만5,000원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지역화의 추세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3국 역시 경제적 필요에 의해‘동아시아’라는 한 울타리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의 밑바탕에는 3국의 공통적인 유교 전통과 3국의 연대를 통해 일본 우파의 역사 왜곡을 막아보려는 현실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이 대목에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군사주의와 국가주의, 인종주의 등을 날카롭게 지적한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한ㆍ중ㆍ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바람직한 미래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의>
저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를 뒤집어 보고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의 모습을 끄집어 낸다. 역사적으로 전통을 반성하고 새롭게 계승, 발전시키려 했던 노력에서 엿볼 수 있는 지역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이를 ‘권력과 기존 가치에 대한 반란’이라고 칭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21세기 동아시아를 그리려 한다.
저자는 20세기 동아시아의 급진적 사회주의에서 동아시아의 반란적 정체성을 발견한다. 공산주의가 지향했던 세계성과 국제성이 국가와 민족이란 경계를 초월하려는 진정한 지역성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또 세계 민중이란 개념을 확립,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한 공산주의 운동에서도 계승할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동아시아의 미래는 민중의 평화적 연대이고, 그것의 근원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이다.
그러나 반란의 사례들은 그다지 생경하지 않다.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에 반기를 들었던 중국 학자 캉유웨이, “나는 마음 외에 공맹도 도도 없다”면서 공자와 맹자의 우상화를 거부했던 중국 명대 학자 이지, 지배계급을 ‘무위도식의 무리’로 규정하고 경자유전(耕者有田)과 자급자족이 이뤄지는 민중의 세상을 꿈꾼 일본의 안도 쇼에키 등은 당대의 주류적 가치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다.
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에 대해 “민족 전체를 계몽ㆍ지도하겠다는 이들은 지배자를 위해 다수의 이익을 짓밟는 자”로 비판한 공산주의 사상가 김명식, 러시아에 귀화한 뒤에도 항일 운동에 나섰던 최재형 등도 새롭게 조명한다. 민족개조론>
저자의 주장대로 민족주의, 권위주의, 남성우월주의, 숭미주의 등 동아시아에 엄존한 가치에 대한 극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책에서 제시한 반란의 역사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유추할 수 있는, 적확한 사례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