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시기 19세기경, 나서 자란 곳 평양 또는 함흥, 겨울에 났으나 요즘은 여름에 더 왕성하게 활동하는 특징이 있음.’ 많은 이들이 조선후기 세시풍속서 <동국세시기> 기록을 통해 그 기원을 추정하는 냉면이 21세기인 지금도 한국의 대표 면 요리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유난히 빨리 찾아온 여름 더위, 점심시간이면 냉면 전문점으로 향하는 직장인의 발길을 잡아 끌기 위한 ‘냉면의 전쟁’이 치열하다. 동국세시기>
▲전통 VS 퓨전
흔히 냉면은 평양식과 함흥식으로 양분되는 메밀가루가 주재료인 한국식 면 요리를 말한다. 하지만 요즘 냉면이라는 말을 쓰려면 범위를 좀 더 확장해 생각해야 한다. 태국, 베트남, 이탈리아 등 각국의 개성을 살린 면 요리 전문점이 거리마다 줄지어 문을 열면서 ‘차가운 면 요리(Cold Noodle)’ 즉, 일종의 퓨전 냉면이 늘고 있는 까닭이다.
달콤쌉싸래한 맛을 살린 서울식 냉면으로 젊은 층에 어필하는 산봉냉면이나 겨자소스와 땅콩소스가 어우러져 달콤새콤하면서 맵지 않은 개운한 맛을 내는 중국식 냉면은 이제 퓨전 축에도 못 들 정도다.
쌀국수를 차갑게 해 비빔국수로 내놓는 베트남식 냉면, 라면 면발을 얼음에 담가 차갑게 조리한 요리 등 차가운 면을 여름 별미로 내놓는 레스토랑이 꽤 된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쌀국수전문점 누들팩토리는 가쓰오 국물과 순쌀면으로 만든 일종의 냉우동 ‘아이스 스플래쉬’를 선보였다.
한편 한국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냉면집들은 최근 창업자 2세들이 경영권을 이어받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다.
▲평양 VS 함흥
그렇다면 전통 냉면인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서로 어떤 차별성을 띨까. 평양냉면은 평안도 지방에서 추운 겨울 차가운 동치미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식문화에서 유래한다. 메밀가루에 감자 전분을 섞은 면으로 국수를 뽑는다. 메밀 함량이 높아 함흥냉면에 비해 면발이 굵고 쉽게 툭툭 끊긴다. 주로 사골을 우린 물이나 동치미 국물을 육수로 쓰는데 밍밍한 맛이 특징이다.
함흥냉면의 재료가 되는 면은 감자 전분, 고구마 함량이 많다. 함경도는 개마고원이 있는 험한 산간 지대인 까닭에 잡곡 생산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면발이 평양냉면에 비해 가늘고 질기다. 또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동해안을 끼고 있어 생선과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많이 발달했다. 회를 얹어 먹는 회냉면이 유명한 것도 지리적 영향 때문이다.
결국 필동면옥, 을밀대, 우래옥, 을지면옥 등 평양냉면 전문점에서는 물냉면을, 오장동 함흥냉면처럼 함흥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는 비빔냉면이나 회냉면을 주문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 VS 비빔
‘물비면을 아십니까.’ 중국집에서 가장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 자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선택하는 일이라면 냉면집에서는 물냉면과 비빔냉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갈등이 시작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물비면’이 인기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반반씩 함께 내놓는 것으로 몇 년 전 등장해 반짝 인기를 끌었다.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으면서 요즘 다시 인기 상승중이다. 물냉면은 육수의 깊은 맛을 원하는 중ㆍ장년층에 인기가 많으며, 달콤새콤한 비빔냉면은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선호한다.
아예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섞은 듯한 맛은 어떨까. 서울 창신동에 위치한 깃대봉냉면은 물냉면도 ‘매운, 덜 매운, 보통 매운’ 등 여섯 가지의 매운 정도 중 선택한다. 이렇다 보니 일반 물냉면처럼 맑은 육수가 아닌 빨간(취향에 따라 시뻘건) 국물이 있는 물냉면을 맛볼 수 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