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Pure) 화이트, 에머시스트(Amethyst) 블랙, 살사(Salsa) 레드, 게코(Gecko) 그린…
색깔이 이름을 얻고 있다. 김ㆍ박ㆍ최씨가 다 같은 사람이 아니듯 색도 성(姓ㆍ원색)이 동일하다고 다 같은 색깔은 아니다. 제품에 다양한 색깔을 입히는 '컬러 마케팅'만으로는 진부하다.
원색 앞에 언뜻 들어선 알쏭달쏭한 수식어를 달아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품 색깔 이름짓기(Naming)가 최근 두각을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색깔 정체성'(CIㆍColor Identity) 시대다.
흰색은 순결하게
신혼부부를 위한 아이템에는 은근히 흰색이 많다. 성인 남녀가 평생을 기약하는 최대 축제인 결혼은 순결한 이미지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흰색의 대표 이름은 '순결'(Pure)이다.
BIF 보루네오는 신혼부부를 위한 침실가구 세트 중 하나를 '이오레 퓨어 화이트'라고 명명했다. 흰색 톤을 주 색깔로 아늑하고 깔끔한 침실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특징이다. 좋은사람들의 란제리 브랜드 '섹시쿠키'도 결혼 시즌을 맞이하여 웨딩 란제리 '퓨어 화이트'를 선보였다. 순결한 신부의 상징인 백합과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킨다.
'귀족'(Noble)이라는 이름을 얻은 흰색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스포츠카 투스카니 흰색 모델은 원숙하고 품격 높은 느낌을 주기 위해 '노블 화이트'다. 거리에 널린 흰색 차량에 비해 이름만으로도 우아하고 고급스럽다.
빨강은 경쾌하게, 때론 다정하게
빨강하면 열정을 떠올리지만 조금 식상하다. 덕분에 빨강은 색다른 CI가 가장 두드러진 색깔이다.
LG전자의 MP3 'FM37 뉴 비틀 에디션'은 활동적이고 경쾌한 리듬을 담기 위해 레드라는 성 앞에 댄스음악인 '살사'(salsa)라는 이름을 붙였다. 녹색 제품도 그냥 그린이 아니고 개성을 듬뿍 담은 '게코(도마뱀) 그린'이다.
전자사전 프라임 트위스터의 색 성명은 '레드 카펫'이다. 영화 시상식장의 화려한 붉은 카펫을 떠오르게 한다.
아모레퍼시픽의 남성화장품 브랜드 오딧세이의 색깔 이름은 '낭만'(Romantic)이다. '로맨틱 레드'라는 색명은 붉은 색의 거칠고 강렬한 분위기 대신 부드럽고 다정한 느낌을 온몸에 스미게 한다.
검정은 칙칙함을 벗어나게
검정이라는 성은 진지하지만 무겁고 칙칙하다. 검정 제품에 화려하고 세련된 이름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LG전자의 노트북 '엑스노트'의 메인 컬러는 '크리스탈 블랙'이다. 아름다운 광택을 지닌 보석의 이미지를 담았다. 팅크웨어의 내비게이터 '아이나비UZ'의 검정 색 모델도 보석의 하나인 '자수정'(Amethyst)으로 불리고 있다. '에머시스트 블랙'은 세련미를 더한다.
이밖에 쌍용자동차의 대형 세단 체어맨은 '클래식 블랙'으로 중후함을, 메이블린뉴욕의 검정 마스카라는 '언스탑퍼블 샤이니 블랙'으로 쉽게 번지지 않고 속눈썹을 반짝이게 하는 제품의 특성을 살렸다.
이제 색깔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제품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제품 색깔의 풀 네임(Full Name)을 불러주었을 때 제품은 소비자에게 다가가 온전한 소유물이 된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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