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가 최근 경주 남산의 열암곡에서 발견한 대형 마애불상을 공개했다.
천 년 동안 땅에 엎드려있던 부처님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마애불은 높이 610㎝, 폭 250㎝, 두께 190㎝에 무게가 70톤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에 키 500㎝ 정도의 부처를 돋을새김한 것이다.
첫눈에는 그냥 커다란 너럭바위처럼 보인다. 서 있던 자리에서 앞으로 넘어져 불상을 조각한 정면이 땅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5월 22일 발견 당시에는 발과 옷의 끝 자락만 보였으나 지금은 주변의 흙을 파내 어깨와 목 부분까지 기우뚱하게 드러나 있다.
불상의 머리는 산비탈 아래쪽에 파묻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엎어진 마애불을 보려고 땅바닥에 누워 안쪽을 살펴보니, 가슴에 얹은 왼손의 엄지 손톱과 목의 세 줄 가로 주름, 배 아래로 떨어지는 U자형의 옷 주름이 뚜렷하다.
정은우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불상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야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겠지만, U자형의 평행한 옷 주름과 대충 뭉툭하게 처리한 발 모양 등 표현 양식으로 보아 8세기 중후반부터 9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 같다”고 추정했다. 정 교수는 “전체적으로 양감이 뚜렷하고 우람한 모습을 하고 있어 훌륭한 불상임에 틀림없다”며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최성은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도 “통일신라 때인 8세기부터 유행한 전형적인 불상”으로 보았다. 이 마애불은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늘어뜨리고 있어 불상 수인(手印ㆍ손모양)의 정형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수인은 경주 남산의 왕정골 출토 마애불, 동국대 소장 마애불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마애불은 몇 가지 수수께끼와 고민을 던지고 있다.
첫째, 원래 어디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현재로선 주변에 병풍처럼 둘러선 암벽의 일부였다가 지진 등 천재지변이나 다른 어떤 요인으로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왜 이제야 발견됐을까.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관련 기록도 전무한 상태에서 평소 사람이 다니지 않는 숲 속에서 땅에 엎어진 채 있어서 발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이 크고 무거운 돌부처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까. 이건 고민거리다. 무게가 70톤이나 되기 때문에 중장비를 써야 하지만, 불상이 산 중턱의 좁고 가파른 비탈에 있어 중장비가 올라갈 수 없다. 군용 헬기를 띄워 와이어로 끌어당기려 해도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마애불이 엎드린 자리를 조금 파내어 지렛대의 원리로 들어올리거나 조각면이 하늘을 보게 돌아 눕히는 것이지만, 그럴 경우 무게를 못 이겨 비탈 아래로 미끄러질 위험이 있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다 보니, 마애불 스스로 벌떡 일어서거나 돌아누우라고 천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경주 남산은 ‘천불천탑불국토’라는 말에 걸맞게 불상이 널려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도 마애불 50점, 석불 300점이 넘는다. 이곳 마애불 중에는 키가 10m에 이르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3~4m 정도여서 이번에 발견된 것은 매우 큰 편에 속한다.
경주=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