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슈퍼모델의 ‘몸’이구나 싶어요. 어디 한군데 손볼 데가 없을 만큼 옷이 완벽하게 맞는 거에요.”
28일 하이얏트호텔에서 열린 여성복 브랜드 구호의 2007가을겨울 패션쇼. 디자이너 정구호씨는 무대에 선 혜박(22ㆍ한국명 박혜림)을 두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성공한 동양인 모델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혜박이 국내 패션쇼에 처음 선 무대였다. 178cm에 48kg의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 동양인 특유의 쪽 째진 눈에 작고 섬세한 얼굴. 동양인 최초로 샤넬과 프라다의 모델로 발탁됐고, 한번 쇼에 설 때마다 출연료로 최소 8,000달러(약 760만원)를 받으며, 현재 전세계 톱모델 순위(www.models.com) 21위에 올라있는 혜박이 세계적인 톱모델로 살아가는 즐거움과 고충을 털어놓았다.
- 현재 소속된 모델에이전시 트럼프는 어떤 회사
“리사 칸트, 폴리나, 이카트 등 세계적인 모델들이 소속돼있는 회사예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씨가 운영하고 있고요.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회사이기 때문에 모델활동에 큰 도움을 받아요.”(혜박은 트럼프사가 애지중지하는 모델로 알려져 있다)
- 모델이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꿈이었어요. 하지만 키만 컸지 동양인에다가 예쁜 얼굴이 아니라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본계인 데본 아오키가 성공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길거리에서 우연히 모델 스카우트에게 캐스팅된 것이 시작이 됐지요.”
- 모델 치고는 상당히 늦은 나이(20세)에 데뷔했다
“보통 외국 모델들이 15,16세에 데뷔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죠. 나이와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핸디캡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 국제 무대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패션계도 기본적으로 사람이 움직이는 곳이에요. 사람 사이의 친분이 중요하죠. 친분을 쌓으려면 기본적으로 영어가 되어야 해요. 저는 중학교 3학년때 미국 유타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 큰 장점이 됐어요. 패션쇼에 설 때도 디자이너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들이 모델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 옷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알아야 더 잘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 동양인에 대한 편견은 없었는지
“거의 백인종이 잡고 있는 모델계에서 동양인은 너무 튀는 존재예요. 얼굴도 특이하고 머리카락도 검고. 서양 디자이너들로서는 검은 머리에 황갈색 피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난감한거죠. 더구나 동양인은 낯을 가리고 말이 없다는 평을 듣는데 이유는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기 때문일 것이고. 말이 없으니까 자신감도 없어 보이고요.”
- 마크 제이콥스, 오스카 드 라 렌타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총애하는 모델로 알려져 있다.
“오스카 드 라 렌타는 미국판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 패션에디터 앙드레 탈레와 ‘삼인방’이라고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에요. 그들중 앙드레 탈레가 특히 저를 높이 평가했는데 그래서인지 괴팍한 할아버지로 정평이 난 오스카가 저에게만은 유독 친절하게 해주시죠. 큰 영광입니다. 마크 제이콥스는 모델 데뷔한 첫 해에 무대에 선 인연이 계속 되고 있어요.”(안나 윈투어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편집장의 실존인물이다) 악마는> 보그>
- 모델로 선 무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쇼는
“발렌시아가 쇼였어요. 발렌시아가는 세계적인 모델들이 가장 서보고 싶어하는 쇼이지만 한번도 백인 이외에 흑인이나 동양계를 세운 적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기회를 주었지요.”
- 그렇게 좋은 기회를 얻게 된 이유는
“운도 좋았고, 주변에선 포즈와 표정이 특히 좋다는 평가를 해주세요.”(혜박은 특히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당당한 워킹, 변화무쌍한 분위기로 정평을 얻고 있다)
- 최근 한혜진이나 송원경 등 국내 모델들이 세계무대에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희소식의 상당부분은 혜박의 선전에 힘입었다는 평이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아시아가 세계 패션산업의 중요한 소비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에 힘입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 같아요. 세 시즌째 모델 계약을 한 갭만 해도 일본시장을 겨냥해 아시아 모델을 처음 쓴 것이라고 하거든요.”
- 모델은 수명이 짧다. 언┗沮?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짧으면 한 시즌, 길면 10년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 20대 중반이면 할머니 소리 듣는 곳이 모델계이지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 모델들은 가령 케이트 모스처럼 십년이 지나도 건재하거든요. 그런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 모델로서의 꿈이 있다면
“?은 시간 과분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돌체앤가반나, 마크 제이콥스, 갭 등 유명 브랜드의 캠페인 모델로도 활동중입니다. 꿈이라면 미국판 <보그> 의 표지모델이 되는 것이죠.” 보그>
- 모델 이후의 삶은 생각해 봤나
“동물을 너무 사랑해요. 지금 유타주립대학 생물학과 휴학중인데 모델 일을 그만하게 되면 학업을 마치고 동물을 보살피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집에서 ‘엔젤’과 ‘재롱이’라는 개 두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얘들이 아파요. 엔젤은 당뇨병에 백내장을 앓고 있고 재롱이는 다리 인대가 끊겨 수술을 받았어요. 절대 동물학대는 아니고(웃음), 자유분방하게 키우다 보니…. 집 떠나 있으면 늘 애들 생각이 간절해요.”
- 세계무대 진출을 꿈꾸는 후배 모델들에게 주는 조언은
“자신감을 갖되 자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확 뜨면 그 순간이 천년만년 갈 것처럼 우쭐대고 버릇없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더구나 동양인은 튀는 만큼 싫증도 금방 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고 채우려고 노력해야 롱런할 수 있습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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