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은 매우 뒤틀려 있다. 잘못된 정보와 단편적 경험을 바탕으로 언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왜곡된 언론관은 터무니 없는 규제 정책을 낳았고, 결국 언론과의 갈등은 위험 수위를 넘었다.
노 대통령은 “기자들이 기사를 가공하고 담합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왜 발표한 대로,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보도자료를 재해석하는 것은 기자 본연의 임무다. 정부 발표 내용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받아 쓰는 것이 오히려 독자를 호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담합 때문에 비슷비슷한 논조의 기사가 생산된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말이다. 언론사는 회사별로 입장이 다르고 이념적 성향도 차이가 난다. 진보와 보수 성향의 언론사들이 어떻게 같은 논조로 보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기자실에서 죽치고 앉아 기사를 담합한다고 했다.
그는 또 언론을 “감시받지 않는 불량 상품” “특권 집단”이라고 비판했는데 이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언론은 소비자인 독자에 의해 매일 상품(기사)으로 검증받는다. 상품이 불량하면 외면당하기 때문에 언론은 항상 소비자를 의식하며 자기 계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눈에는 특권을 갖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집단으로 비쳐져 있다.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둘러싸고 “선진국에는 기사송고실이 없다”고 주장한 점도 현실을 왜곡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도 기사송고실이나 기자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진실을 숨기고 있다. 비양심적이다”고 했다.
또 30일에는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언론에도 영합할 줄 모르는 대통령이 무슨 포퓰리즘이냐”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상당수 언론이 노 대통령을 칭찬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포퓰리즘 정책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왜 노 대통령은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언론을 적대시하고 있을까. 손태규 단국대 교수는 “줄곧 비주류 정치인의 길을 걸으며 별반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대통령 선거 기간에도 주요 언론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는 과도한 피해 의식이 강박관념처럼 남아 있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언론을 타도 대상으로 여겨온 점이 지금 노 대통령의 언론관을 더욱 굴절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 노무현 대통령 대언론 발언
"언론에도 영합할 줄 모르는 대통령이 무슨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겠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를) 모욕하는 것" (5월 31일 포항시청서 열린 2단계 국가균형발전정책 토론회서)
"진실을 회피하고 숨기는 비양심적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조치가 마치 언론탄압인양 주장하고 있다" (5월 29일 국무회의서 기자실 통폐합안에 대한 언론 보도를 비판하며)
"기자실에서 공부해 과연 기사를 쓸 수 있느냐. 학습이라도 열심히 하면 되는데 학습을 하는 자세가 돼 있는가. 귀를 열고 듣고 정확하게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걱정스럽다" (1월 31일 참여정부 4주년 기념 국정과제위 합동심포지엄 연설서)
"보도자료를 자기들이 가공하고 담합하는 구조가 일반화해 있는지 조사해라.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 가지고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만들어 나간다" (1월 16일 국무회의서 기자실 실태조사를 지시하면서)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이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니냐. 공직 사회가 언론 집단에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 불량 상품은 가차없이 고발해야 한다" (1월 4일 정부과천청사서 열린 공무원과의 오찬서)
"특권을 갖고 있는 집단(언론)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타고 간다'고 그러고 (내일은) '내려서 걸어 간다'고 그러고, 아침 저녁으로 관점이 바뀌면서 (언론이) 두드린다" (지난해 12월 27일 부산지역 인사들과의 오찬자리서)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