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쏟아지던 지난해 1월 13일의 금요일, 그녀를 만났습니다. 평생을 함께할 ‘운명의 여인’을 만나기엔 좀 무서운(!) 날이었지만 그녀는 어떤 불운의 싹도 싹둑 도려낼듯한 기세로 내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동료 의사의 소개로 만나게 된 그녀는 얌전하게 머리를 뒤로 묶고 회색정장으로 몸을 두른 채 약속한 이태원의 조그마한 스파게티 전문점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이 여자만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지요.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은 상태였지만 ‘부부’라는 인연은 하늘이 내리는 계시와 같은 것이더군요. 단아하고 선한 품행을 보여주는 그녀의 손짓 하나 하나가 은은한 향기처럼 주변을 상쾌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 만난 다음날 무려 석 달 치 공연을 예약했습니다. 공연보기를 즐긴다는 그녀를 위한것이었습니다. 매주 한번씩 공연을 함께 가며 그녀의 마음을 사겠다는 작정이었지요. 그리고는 전화로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평소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서 어떻게 그런 저돌적인 행동이 나왔는지 스스로 대견할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소중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어찌나 맞던지. 병원 응급실을 담당하는 의사로 누구보다 바쁘다고 자부하지만 그녀는 저를 능가했습니다. 호텔 연회 매니저로 일하는 그녀는 너무 바빠서 두 번째 만날 날을 잡기도 쉽지 않았지요. 이리 저리 일정을 맞추다 급기야 두 달여 만에 만난 우리는 고작 우울하기 짝이 없는 ‘조폭영화’ 를 함께 보는 데 만족해야 했지요.
바쁜 일상에 치여 남들은 며칠이면 후딱 끝내는 스킨십 진도를 열등생 수준으로 겨우겨우 따라가다 8월 드디어 프로포즈를 결행했습니다. 서울 중심가의 원 테이블(one tableㆍ말 그대로 테이블이 하나뿐인 곳) 카페 한 곳을 빌려 나름대로 근사한 프로포즈를 계획해놓고 오전에 광릉 수목원으로 차를 달렸습니다.
여름의 끝물에 오른 수풀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우리 커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문 닫는 시간을 30분 남겨놓았을 때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는 수목원을 순식간에 둘 만의 비밀의 공간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연못 옆 오두막의 처마 밑에서 우리는 오롯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덕분에 조촐한 프로포즈는 결혼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으로 다가서는 우리 커플에게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의 한 조각으로 자리잡게 되었답니다. 지난 3월 24일 성당에서 열린 결혼식에 아버님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다짐했습니다. 평생 아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반쪽으로 살겠다고요.
덩치만 컸지 사랑에 어색해 하는 소심한 남자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아내가 참 고맙습니다. 윤재씨, 사랑해. 그리고 코 고는 버릇 고치려고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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