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예비물자(WRSA)'라는 이름으로 한국 내에 보관해온 막대한 양의 미군 구형 탄약을 처리하기 위한 한국과 미국 군사당국자 회담이 31일부터 이틀 동안 국방부에서 열린다. 미국은 대부분 폐기처분 대상인 이 탄약을 어떻게 든 한국측에 떠넘기려는 의도인 것으로 알려져 협상 결과가 주목된다.
국방부는 30일 "이번 첫 협상에는 한국측에서 국방부 탄약팀장 등 10명, 미국측에서 국방부 국제협력관실 아시아팀장 등 8명이 참석한다"며 "한국 내 WRSA 프로그램의 2008년 종결을 목표로 협상 로드맵과 절차를 토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서 등에 따르면 WRSA로 한국 내 관리 중인 물자는 전체 60만톤 규모이며 이 중 99%가 탄약이다. 1970, 80년대 미국에서 소요 초과ㆍ도태 품목으로 분류된 M1, 칼빈 소총 탄약 등 20년 이상 장기 보관 탄약만 20만 톤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기하거나 재활용해 쓰는 것말고는 활용 가치가 거의 없는 전쟁물자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 구형 무기들을 그 동안 보관 중인 동맹국에 떠넘기는 전략을 펴왔다는 점이다. 1995년 M48A5 전차 281대를 주한 미군탄 보관비와 상계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팔았고, 2000년엔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드래곤' 1만4,000기 구매를 제안했다가 2, 3년 내 폐기될 구형 물자라는 이유로 거절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 WRSA 협상을 종결한 필리핀, 태국, 이스라엘은 모두 해당국이 탄약 등을 무상으로 떠안았다.
미국은 1999년 한국 내 탄약 구매를 우리측에 제안했다가 거부당했으며, 군사전략 수정에 따라 2005년 WRSA 폐기법을 발효한 이후 상당 수량을 공정가격(제조원가로 추정)으로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을 앞두고 노후 탄약의 폐기 비용을 한국이 떠맡으면 WRSA를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다는 협상 전략을 펼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국방부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물자만 골라 산다"는 원칙 이외에 구체적인 협상안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08년 완공 목표로 충북 영동군 매곡면 수원리에 폐탄약 소각(연간 7,141톤) 및 용융(鎔融ㆍ7,171톤)시설을 건립 중인 점을 감안하면, 한미간에 WRSA 탄약 처리에 관한 잠정 합의가 있거나 적어도 상당량의 폐탄약을 떠안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시민단체는 "74년 이후 한국이 제공한 WRSA 관리비만 물자 가치를 넘어선다"며 "쓸모가 없고 폐기 과정에서 환경오염까지 생길 수 있는 무기는 미국이 모두 가져가 자국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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