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은행 공동검사권을 둘러싼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한은이 최근 금감원에 “금융회사 수시검사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명문화해야 한다”며 양해각서(MOU)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금감원 실무 부서는 “한은이 통화신용정책과 무관한 감독권까지 장악하려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30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은은 최근 금감원에 공문을 보내 2002년 10월 두 기관이 체결한 공동검사에 관한 MOU 개정을 요구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말 시중은행에 대한 외화대출 공동검사 과정에서 은행의 개별 여신자료 요청을 둘러싸고 금감원과 마찰을 빚자, 연초 이성태 총재가 “제대로 된 공동검사권 행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실무진에 지시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요구의 골자는 “필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공동검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MOU에 명문화하자”는 것. 한국은행법은 ‘통화신용정책과 관련해서 한은이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로 금감원에 요청할 수 있고 이에 금감원은 지체없이 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통화신용정책과의 관련 여부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에 논란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은 연초 종합검사계획 수립 당시 공동검사 일정이 사실상 확정돼 연중에 부문검사 등의 필요성이 발생해도 공동검사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고 금감원 주도의 검사에 들러리를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은의 주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은 MOU 내용을 정비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금감원 실무 부서는 발끈하고 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한은이 넘쳐나는 잉여 인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공동검사권을 확대해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MOU에 수시검사를 명시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공동검사에 참여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수검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장 검사를 최소화하고 상시 감시를 강화하자는 것이 MOU의 기본 취지였다”며 “가뜩이나 통화신용정책과 관계없는 자료까지 요청하는 마당에 수시검사권을 MOU에 명시할 경우 불필요한 현장 검사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동검사권을 둘러싼 금감원과 한은의 갈등은 골이 깊다. 2002년 7월 한은이 금감원에 하나은행에 대한 공동검사를 요구했다가 거부된 것을 계기로 그 해 말 원활한 공동검사를 위한 MOU를 체결했지만, 공동검사 계획 수립이나 현장 검사 과정에서의 마찰은 번번히 불거졌다.
특히 지난해 말 외화대출 공동검사 과정에서는 “금감원이 은행들의 자료 제출을 방해한다”(한은), “한은이 은행들에게 이중 부담을 지우고 있다”(금감원)며 팽팽히 맞서 파행을 빚기도 했다.
두 기관은 시간을 두고 충분한 의견 조율을 거쳐 MOU 개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어 해묵은 갈등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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