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국정홍보처가 주도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빚어낸 파장을 보며 진 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떠올랐다.
노동부 장관 시절 그는 기자실에 예고없이 들러 자주 기자들과 바둑을 두곤 했다. 장관이 기자들과 바둑을 둘 만큼 한가로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그는 기자들과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방편으로 바둑을 택했고, 바둑을 두며 정부 정책을 설명하고 언론의 의견을 듣거나 이해를 구하곤 했다. 때론 노동계 현안을 놓고 기자들과 격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토론은 선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되기도 했다. 경제 부총리 시절에는 자주 기자들을 집무실로 불러 정책 배경을 설명하고 토론하기를 즐겼다.
"경제는 심리다. 같은 경제 정책이라도 언론이 어떻게, 어떤 쪽으로 끌고 가느냐에 따라 정책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평소 지론대로 그는 정책 입안 및 시행 과정에서 언론을 십분 활용했다.
진 전 부총리가 참여정부에서 요직에 기용돼 평소 소신대로 언론과 접촉했다면 그는 아마 '기자들 밥 사주고, 술이나 사는' 인사로 낙인찍혀 일찌감치 퇴출됐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처럼 기자들을 담합이나 하고 공무원 업무를 방해하는 집단쯤으로 여기는 참여정부 인사들이 진 전 부총리의 '언론 동반자론'을 용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진 전 부총리는 기자들을 만나 정책 수립시 미처 착안하지 못한 점이나 챙기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잘못 판단한 내요은 없는지를 점검한 것이다. 일종의 정책 여과 과정이다.
물론 공청회라는 공식 여론수렴 절차가 있지만 진 전 부총리는 그런 자리에서 저마다의 지식과 이익을 내세우는 전문가나 이해집단 대표들보다는 언제나 국민 입장에서 정책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기자들의 의견과 판단이 더 유용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같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진 전 부총리는 기자실과 집무실에서 국민과의 간접 대화를 한 셈이다.
사실 상당수 경제 관료들은 진 전 부총리의 '언론 동반자론'에 공감한다. 국민들이 정부의 경제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 팩트 전달 보다는 경제 현상에 대한 분석 등 정책이 나온 배경을 정확히 알리는게 중요하고, 그런 만큼 기자들과 자주 만나 설명하고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브리핑제가 시행되기 전만 해도 과천 경제 부처 사무실에서는 각종 그래프를 직접 그려가며 기자들에게 정책 배경을 설명하는 관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 등은 기자들이 공무원의 업무시간을 빼앗는다고 강변하지만 정부 정책을 평가하고 알리는 위치에 있는 기자들을 만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업무다.
알맹이 없는 일방적 브리핑, 질문 횟수마저 제한하는 전자브리핑이 국민들에게 정부 정책을 제대로 전달해줄 것이라고 믿는 관료들은 없을 것이다.
정부와 언론 사이에 높은 벽을 만드는 브리핑제도가 선진적인 것이라고 맹신하는 참여정부의 기자 출신 인사들은 정부와 언론이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를 좀 더 고민하기 바란다. 한번쯤 진 전 부총리를 만나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를 통해 비뚤어진 '노무현식 언론관'에 균형감각을 불어넣기 바란다.
황상진 경제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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