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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조직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입력
2007.05.2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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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맨들이 이기적인 것처럼 정부 관료들도 그들 못지않게 이기적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이 창시한 공공선택학파 이론의 핵심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기업인처럼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도 정치적 이익과 권력의 극대화라는 이기적 동기에 따라 행동한다는 주장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 이후 경찰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그 이기적 동기가 어느 수준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서울경찰청장과 수사부장, 형사과장, 남대문 경찰서장 등 수사라인의 지휘부가 전임 경찰청장의 청탁 전화를 받고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혐의만으로도 사법기관으로서 경찰의 신뢰는 무너져버렸다.

그들은 수사를 왜곡시키려 했을 뿐 아니라 사건이 공개된 이후에도 거짓 해명으로 국민을 속인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있을 검찰 수사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이미 이번 사건의 초점은 보복 폭행이 아니라 '재벌-경찰-조폭'의 삼각 커넥션으로 옮겨간 상태다.

● 검찰 수사 의뢰에 들끓는 경찰

수사 무마 시도도 어이없지만 감찰조사 발표 이후 경찰 조직이 보이는 반응은 더욱 놀랍고 개탄스럽다. 지금 경찰 내부 분위기는 거의 폭발 직전이라고 한다.

이택순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게시판에 쏟아지고, 경찰청사 앞에서는 전ㆍ현직 경찰관들이 청장 사퇴를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찰의 참담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분노하는 대상은 국민의 분노와는 너무 거리가 있다. 경찰청장이 청와대의 지시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사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다. "무능한 간부는 적보다 무섭다. 수사관 독립의 '수'자로 꺼낼 자격이 없다"는 경찰 게시판 글이 그런 분위기를 잘 함축한다.

경찰대학 출신을 대변한다는 한 경찰 간부는 이 청장의 사퇴를 공개요구하면서 "청장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은 수사권독립 포기 선언과 다름 없다"는 이유는 들었다.

그들이 비분강개하는 이유 어디에도 경찰의 본분을 저버린 비리에 대한 반성이나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과 정의의 수호자라는 15만 경찰의 자부심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데 대한 질타도 들리지 않는다.

대등한 관계로 만들고 싶은 검찰 앞에 경찰 수뇌부가 줄줄이 피의자로 나서게 됐다는 치욕이 부끄러울 뿐이다. 수사권 독립이라는 조직의 지상명제가 불가능해졌다는 상황에 분노할 뿐이다. 국민의 인권을 지키고 법질서를 세우는 본연의 논리는 간 데 없고 조직의 논리만이 판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경찰만 탓할 일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공공의 이익과 선을 추구하는 건전한 공동체 의식이 힘을 잃어가고, 이기적 조직의 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도 지극히 사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조직 차원에서 개입함으로써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도록 했다. 무슨 짓이든 해서라도 오너를 보호해야 한다는 조직의 논리 앞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기업 풍토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얘기다.

● 보편적 가치 중시하는 풍토를

천문학적 빚을 짊어지고도 조직을 늘리고, 각종 편법으로 임금을 올리기에 급급한 공기업이나 악화하는 경영사정에도 불구하고 파업만 일삼는 일부 대기업 노조도 조직 이기주의의 전형이다.

현직 기자 시절 누구보다 정부의 언론통제 시도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들이 권력에 가담해서는 그 통제에 앞장서는 많은 사례에서도, 조직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인의 왜소함을 절감하게 된다.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다.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의 이익과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조직이기주의는 어떤 면에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직 논리 위에 공동체적 질서와 보편적 가치가 정립돼야 한다. 그러한 질서가 파괴되는 사회는 양육강식의 정글일 뿐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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