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은 올초 외국계 합작사인 유리제품 생산업체인 쇼트구라모토 사와 퇴직연금 운용 단독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회사와 직원 모두를 설득하기 위해 4개월간 직원들의 임금, 인사 체계 및 회사 재정상태에 대한 정밀 컨설팅을 제공하면서 국민은행의 안정성과 자산운용 인프라를 독일 본사에 적극 홍보한 결과였다.
삼성생명은 이달 중순 직원수 580명의 농수산물유통공사와 퇴직연금 운용계약을 맺었다. 당초 공사 직원들은 "안정적인 공사 직원의 돈을 굳이 외부회사에 맡길 필요가 있냐"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으나 6개월 넘게 끈질긴 구애작전을 편 끝에 결국 계약에 성공했다.
최대 180조원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금융권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2011년부터는 국내 모든 회사들이 직원의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아직 전체 대상 사업장 가운데 도입률이 4%에도 못미칠 정도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로서는 잘만 하면 수조~수십조원의 자산을 늘릴 수 있는 '블루오션'인 셈이어서 각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나서고 있다.
퇴직연금이란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받는 모든 회사ㆍ공무원에게 해당하는 제도다. 한꺼번에 받던 퇴직금을 연금 형태로 전환해 노후를 대비하자는 취지로 정부가 2005년 12월 처음 도입했다. 그동안 퇴직금 적립분 중 일부를 떼어 주로 보험사, 은행 등에 맡겼던 퇴직 보험ㆍ신탁 제도는 2010년말로 없어지고 2011년부터는 퇴직연금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
크게 기존 퇴직금과 비슷하게 회사가 운용 책임을 지는 확정급여형(DB)과 근로자 개인이 운용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뉘는데, 선진국 추세와 달리 아직 국내에는 DB형이 주를 이루고 있다. 10인 미만 기업들은 노사간 규약작성 의무가 면제되는 개인퇴직계좌(IRA) 형태가 많다.
퇴직연금을 도입하면 계약을 맺은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퇴직연금사업자(현재 46개사)에 퇴직금을 맡겨 운용한다. DB는 급여 규모가 정해져 있는데 반해 DC는 근로자의 운용 결과에 따라 급여액이 달라진다.
아직 도입률은 극히 미미한 상태다. 노동부에 따르면 4월말 현재 1만8,922개 기업이 도입, 전체 대상 기업의 3.8%에 그치고 있다. 적립 규모도 겨우 1조원을 넘은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2010년까지 유예기간이 있는데다 당장 도입해도 기존 퇴직보험과 차별되는 세제 혜택이 없어 기업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퇴직연금 도입은 노사 합의가 전제 조건인데 노조가 도입 동의를 대가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것도 부진의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시장을 선점하라
수십 년간 퇴직금 시장은 퇴직보험을 쥐고 있던 보험업계의 전유물이었지만 앞으로는 은행, 증권사와 나눠가져야 할 처지가 됐다.
보험권은 수성(守城)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선두업체인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250~300명에 달하는 전담사업본부를 두고 상품개발 및 시스템 정비에 힘쓰고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30년에 걸친 퇴직보험 노하우가 보험사의 최대 강점"이라며 "퇴직금 운용 관련 전문가, 시스템을 이미 갖추고 있어 최적의 퇴직연금 설계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은행권은 안정성과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내세워 보험사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은행권 최초로 퇴직연금 판매잔액 1,000억원을 달성한 농협은 지금까지 주로 가입했던 중소업체를 넘어 공기업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PB 등 전통적인 자산관리 업무와 막강한 점포망이 은행의 강점"이라며 "대출시 혜택 등 은행만이 제공할 수 있는 부가서비스와 안정성을 영업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시장에 처음 뛰어드는 증권업계는 높은 자산운용 수익률을 강조한다. 현재 13개사가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수십 명씩의 전담 인력을 배치해 영업에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2006년 퇴직연금 운용수익률이 증권은 7%로, 4~5%대인 은행, 보험보다 훨씬 높았다"며 "초기에는 연고나 기존 거래선에 좌우되겠지만 점점 증권업계가 부각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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