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선진사회로 가는 길-릴레이 인터뷰] 임성준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선진사회로 가는 길-릴레이 인터뷰] 임성준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입력
2007.05.28 23:30
0 0

임성준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꾸자”고 역설했다. 지난 주말 서초동 재단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임 이사장은 “외교관 시절 우리 제품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다”면서 “국가의 품격과 국가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국가 전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의 품격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국민 개개인의 노력과 정부, 정치권의 발상이 전환될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_이번 주제는 국격(국가의 품격)입니다.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 국가 이미지의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각국이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경제력, 국방력이 국력의 기본 요소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됐습니다.

하바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는 경제력, 군사력 외에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나 매력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소프트 파워’이론을 제시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소프트 파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경제력에 걸 맞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선 나라의 매력,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데 주력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_한국의 브랜드 파워는 어느 정도입니까.

“지난해 한국의 경제규모는 12위인데 독일 평가 기관인 Anholt-GMI가 발표한 한국의 국가브랜드 순위는 35개국 중 25위였습니다. 이는 브랜드 가치가 실제 GDP의 30% 수준이라는 얘기입니다.

러시아 헝가리 브라질 아르헨티나보다 못합니다. 우리 기업의 해외 주재원들이 ‘상품의 질이 일본에 밀리지 않는데 국가 브랜드 파워가 약해 80%정도밖에 가격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브랜드를 단 수출품은 40%에 불과합니다. 심각하게 봐야 합니다.”

_나이 교수는 소프트 파워를 '다른 나라의 마음을 끄는 힘'으로 규정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소프트 파워가 있는지요.

“있다고 봅니다. 우리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정보통신(IT)분야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삼성이나 LG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분야의 이미지는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아울러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한류도 일종의 소프트 파워로 볼 수 있습니다.”

_그에 반해 어글리 코리안의 행태가 해외에 자주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북유럽에서는 한국 배낭족에 대해 공원 출입금지 구역을 설치해 놓고 있습니다.

국제공항 대기실에서 고스톱을 친다든지, 동남아 골프장에서의 캐디 폭행 등 추태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가 쌓이면 국가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긍지를 갖고 겸손한 태도로 세계를 품으며 여행을 했으면 합니다.”

_조금 다른 문제인데 나이 교수는 부시 행정부가 소프트 파워를 도외시한 힘 위주의 일방주의 외교에 집착, 국제사회의 지지를 잃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를 한미동맹이라는 틀을 유지하기 위해 따라줘야 하는지요.

“미묘한 문제인데,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를 한미동맹과 연관짓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안정을 위해 중요하며 미국은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이자 경제파트너이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발전은 필요합니다. 일방주의 외교에 대해선 국익을 고려, 협조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외교는 독자노선이지 미국에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일방주의 동조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파병했으며 자이툰 부대의 노력으로 이라크 현지의 평가가 높아지는 점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_다시 주제로 돌아가시지요. 국제교류재단이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제약으로 충분한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제교류재단은 발족한 지 16년이 됐습니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브랜드 가치는 경제력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그 괴리는 국민 인식이 그만큼 쫓아가지 못하고 있고 정부나 정치권도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_재단의 기금이 2,800억원이나 쌓여있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습니까.

“재단의 연간 사업비는 260억원 정도입니다. 더 쓰려면 국민 인식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선진국들은 문화 등 보이지 않는 분야에 많은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쪽으로 가야 합니다.”

_선진국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시지요.

“선진국들은 국가 이미지를 위해 엄청난 돈을 쓰고 있습니다. 영국은 국제사회에서 이미지가 잘 확립돼있음에도 교류재단인 브리티시 카운슬(British Council)이 연간 9,000억원의 예산과 7,000여명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Goethe Institute)도 2,500억원에 3,000여명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투자는 보잘 것 없지요.”

_규모도 그렇지만 대외 홍보가 소극적, 방어적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미국의 권장도서가 된 '요코 이야기'에 대해 소극적으로 이를 교정하려고만 하지 말고 일본의 만행과 침탈을 소개하는 책을 만드는 적극적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공감합니다. 요코 이야기를 반박하면 수세적이고 옹색한 입장에 몰리게 됩니다. 그것을 덮을 수 있는 저술이나 논문이 나오면 국제사회는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항의보다는 제3국 학자들이 고구려사를 제대로 연구해 제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자료는 객관적 증거가 됩니다. 하바드대 한국학 연구소의 바잉톤 박사는 고구려사를 연구하는데 자금 때문에 최근 대학을 떠날 상황이었습니다. 교류재단이 5년간 더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_스미소니언이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있는 한국관이 일본관이나 중국관에 비해 형편없이 빈약한데 개선책은 없는지요.

“재단의 역점 사업 중 하나가 해외 유수 박물관에 한국실을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규모도 작고 전시물도 보잘 것 없는데 이 사업을 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관, 일본관이 버젓이 있는데 우리 유물이 소수 국가 전시실에 방치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유물 규모가 중국, 일본에 비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독창성에서는 밀리지 않습니다.

파리의 기메 박물관에는 한국실이 3개나 됩니다. 이 사업은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전시품이 부족하면 이집트처럼 진품과 동일한 레플리카(복제품)를 만들어 이미지를 전달하고 역사를 소개하는 등의 개선점을 모색할 생각입니다.”

_냉전시대 미소간 학생ㆍ교수 교류사업이 훗날 소련의 개방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르바초프 개방정책의 브레인인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가 1958년 이 프로그램으로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면 어떻습니까.

“2차대전 후 미국은 공보처(USIA)를 만들어 자국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교류재단을 통해 주요 인사를 초청하고 차세대 젊은이들을 초청, 한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젊은층에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_북한과 그런 교류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있지만 교류사업을 할 정도까지 진척되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 검토해 볼 사항입니다.”

_국제사회의 기여, 즉 대외원조도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중요한 포인트인데 한국의 대외원조는 너무 적지 않은지요.

“통계상으로 보면 인색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이룬 경제력을 개도국이나 빈곤국과 나누는 지원외교가 필요한 시점이 됐습니다. 대외원조는 국제적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그에 한참 미달합니다.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무슨 원조냐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지금 세계는 홀로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가 있습니다. 과거 LA폭동 때 한국인이 돈만 벌고 지역에 기여하지 않는다며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_홍보만으로 국가 이미지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도적으로 내실을 기해야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국가의 품격은 사회질서, 제도, 이념이 국제사회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을 때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사회적 시스템의 혁신, 수준 높은 문화의 창달이 이루어져야 국격이 높아집니다. 내용이 없이 외형만으로 국격이 높아질 수는 없습니다. 국가체질이 튼튼해져야 국격이나 국가 브랜드가 올라가겠지요.”

● 임성준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외교부의 주요 자리를 섭렵한 정통외교관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합의점을 찾아내는 협상가다(외교부 심윤조 차관보 평). 2차 핵 위기 때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의 우리측 수석대표(2001~2002년초)를 맡아 미국과의 이견을 소리없이 조정해냈다. 욕심도 많다. 금년 초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맡은 뒤 재단 직원들은 무척 바빠졌다. 끊임없이 일거리를 찾아 지시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주요 국가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묶는 '스피커스 포럼'을 추진하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국가의 품격, 소프트 파워를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다.

외교관의 기본적 자질인 사람 사귀기에도 깊이가 있다. 금년 초 재단 이사장에 임명돼 대사로 있던 캐나다를 떠날 때 이임 리셉션에 밀리칸 국회의장, 피터 맥케이 외무장관 등 캐나다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임 이사장은 "한국의 위상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외교가에서는 "임 이사장의 캐나다 팬들이 많다"고 평한다.

1948년 서울생

서울대 외교학과, 영국 옥스포드대 대학원,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 수료

1974년 외무부 사무관(외무고시 4회)

1978년 주 일본대사관 2등 서기관

1984년 주 버마대사관 참사관

1986년 청와대 파견

1988년 동북아1과장

1990년 주 미국대사관 참사관

1993년 미주국 심의관

1993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외교비서관

1995년 미주국장

1996년 주 이집트 대사

2001년 차관보

2002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2004년 주 캐나다 대사

현재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사진=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인터뷰=이영성 편집위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