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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백화점式 고급 매장'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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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백화점式 고급 매장' 먹혔다

입력
2007.05.2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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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다국적 유통 브랜드의 무덤?'

세계 유통시장 1,2위 월마트와 까르푸가 한국 땅에서 버티지 못하고 지난해 손들고 나가자 이런 평가가 나왔다. 영국계 주거ㆍ가구용품 할인점 비앤큐도 최근 한국 진출 2년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하지만 영국계 테스코의 홈플러스는 정반대의 답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5조4,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할인점 업계 랭킹 2위를 차지했다. 외국계로는 거의 유일하게 토종업체들을 견제하고 있다.

영국계 테스코는 한국 진출시점은 까르푸, 월마트보다는 늦었다. 카르푸는 1996년, 월마트는 98년 들어왔고, 테스코는 99년 삼성물산과 손잡고 삼성테스코를 출범시킨데 이어 이듬해 '홈플러스'라는 한국 고유의 할인점 브랜드로 국내 유통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성장세는 거침 없었다. 까르푸와 월마트가 철수 때까지 각각 32개, 16개의 매장을 구축한 반면, 홈플러스는 7년 만에 54개까지 늘렸다.

사실 국내 유통시장은 글로벌 시장의 전략이 그대로 먹혀 들지는 않는 곳이다. 국내 소비자들은 할인점에서 쇼핑을 하더라도 한꺼번에 많은 상품을 구입하기 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구입하고, 차를 타고 멀리 이동하는 것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쇼핑하는 것을 선호한다.

홈플러스가 살아 남고 까르푸와 월마트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한국적 소비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월마트와 까르푸가 한국 안착에 실패한 원인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원칙에 얽매여 현지 적응에 필요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월마트와 까르푸는 철저히 다국적 기업이었다. 매장구성부터 기업문화까지 한국적 상황과는 동떨어졌다. 한국형 할인점 매장은 초창기 창고형에서 백화점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고급형으로 진화했으나, 월마트와 까르푸는 높은 진열대에 물건을 쌓아놓는 창고형 인테리어를 고수했다.

상품 구성도 가공식품 일상용품 위주이고, 신선식품 부문이 빈약했다. 점포 입지에서도 까르푸는 중심상권에 진출하기 보다는 임대비용이 싼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기업문화도 한국을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현지 파트너 없이 직적 진출한데다가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외국인이었다. 까르푸는 사장과 임원이 모두 프랑스인이었고, 월마트도 사장과 부사장은 외국인이었다.

홈플러스는 정반대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인치범 삼성테스코 홍보팀장은 "홈플러스는 철저한 현지화 경영으로 한국시장을 공략했다"며 "외국을 모방한 창고형 일색의 할인점 업계에 홈플러스는 한국형 할인점의 표준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본사의 선진화한 유통 노하우를 받아들이되, 영업과 마케팅은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철저히 현지화하는 '글로컬(glocal=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 스탠더드'를 내세우고 있다.

삼성테스코는 테스코의 지분율이 출범 당시의 50%에서 89%로 늘었으나, 월마트나 까르푸와 달리 한국인 사장에 경영을 맡기고 있다. 합작법인 출범부터 9년째 경영을 맡고 있는 이승한 사장은 '오너형' 최고경영자(CEO)를 자처하고 있다. 기업 문화에서도 우리의 '신바람'문화를 정착시켰다.

홈플러스는 매장 인테리어 고급화를 선도하고, 문화센터 등 각종 편의시설을 운영하는 한국형 할인점 매장 모델을 제시했다. 은행 약국 세탁소 미용실 병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원스톱 쇼핑'형의 홈플러스 모델은 이마트 롯데마트 등도 벤치마킹했다.

홈플러스는 기존 창고형 개념에서 과감히 탈피해 '가치점' 개념을 도입, 매장 인테리어를 백화점 못지 않은 수준으로 고급화했다. 할인점 도입 초기인 90년대에 일반적이었던 4~5m의 창고형 진열대 높이를 2.2m로 낮추고 국내 할인점 최초로 무빙워크도 설치했다.

매출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이른바 '골든존'인 1층 매장을 상품 코너 대신 푸드 코트나 서점, 의류코너로 구성하는 것도 럭셔리 할인점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해 8월 오픈한 서울 신내점에는 할인점 최초로 남성 고객을 위한 20평 규모의 휴게실을 마련하기도 했다.

홈플러스 측은 럭셔리 할인점의 핵심으로 문화센터를 꼽았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백화점이 운영하던 문화센터를 할인점에도 처음으로 도입함으로써 할인점의 역할을 물건을 싸게 파는 곳에서 지역주민의 커뮤니티센터로 격상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홈플러스가 운영하는 문화센터는 45곳으로 연간 회원수만 5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월마트, 카르푸의 철수와 홈플러스의 정착은 국내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성공전략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 정답은 바로 현지화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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