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가 코믹했다.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니….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격앙된 표정으로 "몇몇 기자가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를 담합한다"고 준열히 꾸짖었을 때 그는 기자 일반을 썩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만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운 기자 분들을 위해 취재를 선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시스템적으로 도와 드리겠다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하기야 1980년 신군부가 정권 찬탈을 위해 언론사를 마구잡이로 통폐합할 때도 그 시나리오를 담은 문건의 제목은 '언론 건전 육성 종합 방안'이었다.
■ 그냥 '기자실 축소 및 공무원 접촉 금지 확대 방안'이라고 했으면 훨씬 쉽고 사실 관계를 분명히 하는 중립적인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런 제목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 방안을 만든 사람들이 대통령 지시 한 마디에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서 탁상공론 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나의 오랜 취재 경험으로 볼 때 공무원은 조직이 하는 일을 어떻게 해서든지 그럴 듯하게 포장하려고 든다. 나무랄 일도 아니다. 그 포장을 벗기고 사실을 드러내고 허위를 집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기자다. 아차, 대다수 열심인 공무원들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다는 얘기를 빼놓을 뻔했다.
■ 청와대 홍보수석실 전언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누가 이걸 하고 싶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언론과 여야 정당과 많은 국민이 이러면 안 된다고 하고, 대통령 본인도 하고 싶지 않은데 왜 하는지 정말 아리송하다. 혹시 속으로 언론을 탄압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차베스씨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런 깊은 뜻을 갖고 하는 일 치고는 사뭇 유치하다. 도대체 정부가 관심 가질 일이 아닌데 '너희들 좀 괴로워 봐라'하는 식으로 나오는 것을 가지고 거창하게 언론 탄압 의도 운운하기도 겸연쩍다.
■ 그럼 왜? 혹시 이 비슷한 건 아닐까? 연산군이 어느 날 사소한 일을 가지고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며 일개 유생을 벌 주려 했다. 그러자 홍문관에서 상소를 올렸다.
"대신은 전하의 팔다리이고, 사간원과 사헌부, 승정원은 눈과 귀입니다. 대신이 안 된다고 하고, 사간원 등도 아니라고 하는데 전하만 홀로 고집을 부리니 팔다리를 없애고 눈과 귀를 버리는 것입니다. 팔다리를 없애고 눈과 귀를 버리고도 머리가 홀로 보전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심한 언론(言論)을 접한 연산군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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