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및 취업 준비 열풍으로 전공 선택 기피 현상에 골머리를 앓던 서울대 인문대가 조기 전공 선택 의무화라는 칼을 빼들었다. 학생들은“차라리 예전 학과별 모집으로 돌아가라”고 반발했다.
서울대 인문대는 최근 학과장회의를 열어 인문Ⅰ(어문계열)과 인문Ⅱ(역사ㆍ철학계열) 학부생 모두 입학한 뒤 3학기 내에 전공 과정 진입을 신청하도록 못박았다.
현재는 인문Ⅰ은 2학기, 인문Ⅱ는 4학기를 마친 뒤 전공 진입을 신청하게 돼 있으나 학생들은 전공 선택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다. 인문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전공 선택을 미루려는 것은 각종 고시공부, 전과(轉科), 재수 등을 준비하거나 상대적으로 취업하기에 좋은 이른바 ‘인기학과’에 가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심지어 일부 학생은 4학년 때까지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있어 조기 전공 선택 의무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창민 인문대 교무부학장은 “전공 진입 신청을 하지 않으면 강제로 정원이 차지 않은 학과에 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문대는 또 영문학과 등 일부 인기 전공에 학생들이 몰려 비 인기전공 고사 우려를 낳던 인문Ⅰ의 학과별 정원을 고정하기로 했다. 인문대는“지금까지는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영문과와 중문과 등이 전공 진입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인원을 제한하면서 잡음이 있었다”며 “정원을 공식적으로 고정함으로써 전공 진입을 둘러싼 잡음이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인문대는 또“학과별 쏠림 현상을 막아 학생 과밀이나 과부족으로 인한 교육의 질적 저하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원은 영문과 28명, 국문과 25명, 중문과 22명, 다른 학과는 15, 16명이며, 신청 인원이 많더라도 정원의 120% 이상을 넘을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인문 Ⅱ의 역사ㆍ철학 계열 학과는 전공 진입 신청이 비교적 고르게 이뤄지고 있어 정원 제한을 하지 않았다.
인문대의 결정에 대해 학생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다양한 교양 과목을 들으면서 전공을 선택한다는 것이 학부제의 취지인데 3학기 내에 학과를 정하도록 강제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조기 전공 선택 의무화나 정원 고정은 비인기 학과 교수들의 이해 관계에만 맞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대 인문대 학생들이 고시 등 전공과 무관한 공부에 열중하는 것도 사실이다. 21일 법률저널에 따르면 올해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38기 연수생 중 서울대 출신은 330명으로 이중 44.2%인 146명이 비(非) 법대생이었다. 인문대는 26명으로 사회대(43명), 공대(31명)에 이어 3번째였다. 이에 대해 한 학생은 “학생들이 전공보다 고시나 취업 공부를 하는 건 졸업해도 인문계 전공으로는 직장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사회를 바꾸지 않고 전공 선택만 의무화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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