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만화시장이 격변하고 있다. 경이적인 판매부수를 자랑해 온 만화잡지가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는 반면 만화단행본의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만화 원작을 애니매이션과 TV드라마, 영화 등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가 본격화하는 등 일본만화는 양과 질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일본 만화시장에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출판사 슈에이샤(集英社)가 발행하는 <월간소년점프> 가 6월부터 휴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잡지인 <주간소년점프> 의 자매지인 이 잡지는 누적된 적자 때문에 이같이 결정했다. 일본의 만화잡지는 지난해 판매부수가 전년도에 비해 7.6%나 줄어드는 등 침체에 빠졌다. 주간소년점프> 월간소년점프>
만화잡지가 만화왕국 일본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사실을 상기해보면 놀랄만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전성기였던 1990년대 중반 <주간소년점프> 는 600만부 이상, 고단샤(講談社)의 <주간소년매거진> 이 460만부 이상을 판매됐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경이적인 만화잡지 판매량이었다. 이 잡지들은 아직도 각각 280만부와 190만부의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전성기를 재현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주간소년매거진> 주간소년점프>
그렇다고 일본 만화시장 전체가 침체에 빠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만화시장을 주도하는 고단샤와 슈에이샤, 쇼각칸(小學館) 등 3대 출판사들은 잡지 대신 만화단행본이 잘 팔려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만화의 판매방식과 그 경향이다. 예전에는 잡지에서 인기를 얻은 만화가 다시 단행본으로 출판돼 히트를 치는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애니매이션이나 드라마, 영화화를 통해 관심을 모은 단행본이 대박을 터뜨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출판사들은 대대적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고단샤의 만화잡지 <키스> 에 연재됐던 클래식음악 관련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 와 주간소년점프에 실렸던 <데스 노트> 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해 후지TV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20%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노다메 칸타빌레> (전 16권)는 방영후 단행본 판매부수가 권 당 50만부나 증가했다. 이 만화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권 당 100만권 이상이 팔린 대형 히트작이었다. 노다메> 데스> 노다메> 키스>
한국에서도 개봉돼 인기를 모았던 <데스 노트> (전 12권)의 단행본도 지난해 6~11월에만 816만부가 팔려 22억엔을 벌어들였다. 한국에서 만화와 애니매이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원피스> (주간소년점프)와 <나나> (쿠키)를 비롯한 수 많은 작품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이 바람에 만화업계는 한껏 고무되어 있다. 나나> 원피스> 데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일본 만화의 진화로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망가’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온 일본 만화가 본격적인 세계 진출을 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만화가 단순한 출판물에서 종합문화로 신분상승을 할 것이라는 들뜬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만화의 활약에 힘입어 지난해 일본영화는 만화의 활약에 힘입어 흥행수입 등에서 20년만에 처음으로 외국영화를 제쳤다. 일본 만화의 탄력적인 변화가 일본 열도의 문화 전반을 업그레이드하는 활력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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