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한국시간) 제49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돔스토바에서는 관중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남자단식 32강전 첫번째 경기인 주세혁(14위ㆍ삼성생명)과 벨기에의 사이브(34위)가 벌이는 ‘묘기 탁구’의 진수에 매료된 것. 사이브는 때리고 주세혁은 끊임없이 받아 쳤다. 5세트 3-7의 상황에서 무려 30회 가까이 이어진 장거리 랠리에 푹 빠진 관중들은 무아지경 속에 기립박수를 쳤고 두 선수는 관중들에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주세혁의 탁구는 매력적이다. 탁구팬들이 원하는 박진감이 살아 있다. 주세혁은 웬만해서는 먼저 공세를 취하지 않는다. 천천히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한 뒤 느긋하게 뒤로 물러나서 커트로 끊임없이 받아 넘긴다. 짧은 컷트볼에서 맥없이 승패가 갈리는 일이 없다.
항상 주세혁의 경기에서는 장쾌한 파워 드라이브와 이에 맞서는 신기에 가까운 받아 치기가 이어진다. 포인트마다 10회 이상의 랠리가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탁구가 관전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유럽에서 특히 주세혁의 인기가 높다. 삼성생명의 강문수 감독은 “주세혁의 수비탁구는 관중들에게 보는 재미를 주기 때문에 유럽 쪽에서 인기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세혁표 수비 탁구’의 진정한 묘미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격에 있다. 주세혁은 거듭되는 수비 속에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반격으로 점수를 따낸다. 주세혁의 포핸드 드라이브는 국내에서 유승민 다음가는 수준이라는 평가. 200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고인 준우승을 차지한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주세혁과 맞서는 상대는 항상 여분의 웃옷을 준비해야 한다. 랠리가 길고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땀으로 범벅이 된다. 32강전에서 맞선 사이브 역시 4세트가 들어서기도 전에 웃옷을 갈아 입었다. 3세트까지 줄기차게 파워 드라이브로 공세를 취하던 그의 표정은 벌써 지쳐 보였다. 체력이 강한 주세혁은 이후에도 끄덕 없이 사이브를 수비탁구로 괴롭히며 4-1 완승, 16강에 진출했다.
수비에서 공격 전환이 아직 부족하다고 자체 평가를 내린 주세혁은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경기할 때마다 관중들이 즐거워해줘서 기분이 좋다”면서 “다소 급한 성격이지만 수비형 탁구가 잘 맞는다. 앞으로 부족한 면을 보완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유승민(9위ㆍ삼성생명)도 이정삼(137위ㆍ국군체육부대)에 접전 끝에 4-3(7-11 11-7 11-7 9-11 8-11 11-7 11-9) 역전승을 거두고 16강에 합류했다.
자그레브(크로아티아)=김기범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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