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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5대 규제를 깨라] <5·끝> 금·산분리 이대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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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5대 규제를 깨라] <5·끝> 금·산분리 이대론 안된다

입력
2007.05.2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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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주 회사 전환을 선언하고 대변신을 모색중인 A그룹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영업이익만 연간 약 3조원에 달하는 제조 계열사들의 자산 운용을 위해 꼭 필요한 계열 증권사를 금ㆍ산(금융ㆍ산업) 분리를 규정한 공정거래법상 더 이상 소유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룹 관계자는 “매각할지, 지주회사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계열사로 소속을 넘길지 고민중”이라며 “미국의 GE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금융회사인 GE캐피탈의 도움없이 가능했겠느냐”고 지적했다.

#2. “글로벌 플레이어요? 안방에서도 밀리는데, 중국에서 세계적인 금융 회사들과 경쟁이 되겠어요.”

2000년대 초부터 중국 상하이로 영업망을 확충한 국내 굴지의 금융회사 임원 L씨는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외환 및 무역거래나 도와주며, 국제시장의 트렌드를 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L씨는 “자본력과 정보력, 브랜드 등 모든 면에서 밀리는 선진 금융 기관들과 경쟁하려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한국 제조기업과 강력한 산업정보 네트워크부터 구축해야 하는데 어디 그게 가능한 상황이냐”고 한탄했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간에 방화벽(fire wall)을 설치, 상호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력 집중을 막고 건전한 발전을 꾀하자는 일종의 정책 가이드라인이다.

골자는 대기업의 은행소유 금지 및 대기업이 갖고 있는 금융보험사와 계열사 사이에 견고한 칸막이를 치는 것으로, 공정거래법과 금융지주법 등 각종 법으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고 있다. 하지만 80년대부터 시작돼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더욱 확고해진 이 가이드라인을 이제는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계는 국내 산업자본의 금융진출을 막은 결과, 국내은행 대부분이 외국인 손으로 넘어가 향후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과 차세대 성장산업에 대한 지원 과정에서 외국국적의 금융기관이 정부 및 재계와 원활한 협조체제를 구축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또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국내에 쌓여있는 100조원대의 산업자본을 끌여 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실 국내 은행들은 대부분 외국인이 장악한 상태다. 시중은행 가운데 제일ㆍ한미ㆍ외환은행의 대주주는 외국 자본이다. 우리은행 기업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시중은행의 외국인 지분율도 평균 75%를 넘고 있다.

그렇다고 외국의 선진 금융기법이 도입돼 금융산업이 도약했다는 견해도 많지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50대 금융기관 중 일본은 5개사, 중국은 3개사가 올라 있으나 한국은 없다. 국내 은행 중 국민은행이 51위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문제는 이 같은 결과가 지나치게 엄격한 금ㆍ산 분리 및 이에 따른 역차별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외국인의 은행지분 취득에는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국내 산업자본에 대해서만 지분 취득을 금해 형평성 문제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금ㆍ산 분리 원칙이 보험 증권 등 제 2 금융권에 대해서까지 무차별 적용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금ㆍ산 분리가 가장 엄격하다는 미국도 은행에 대해서만 한정하고 있다. 일본이나 유럽 등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까지 허용하고 있다.

또 최근 산업의 융ㆍ복합화 추세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동차나 유통업체의 은행업 진출도 허용하고 있다. 독일의 다임러 크라이슬러 뱅크나, 영국의 사인스베리 뱅크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부처 일부 관료들은 “외환은행 매각도 왜 당시에 론스타에 팔 수밖에 없었느냐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은행을 소유하고 금융산업을 발전시킬 풍부한 산업자본의 통로가 막혀 있기 때문에 외국인의 토종은행 점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최근 “금융 산업에도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꽁꽁 묶어놓은 상태에서 글로벌 금융기관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게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을 전업으로 하는 자본이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국내 주요 기업의 경영능력과 자원을 활용하지 못할 경우 국내 금융산업이 몽땅 외국 자본으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국내 산업은 경영권 방어에 전전 긍긍하다, 성장의 기회를 잃고 국제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암울한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정구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은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우리나라 은행ㆍ증권 회사들은 외국계 은행이나 투자은행(IB)과 경쟁력 측면에서 격차가 있다”며 “빅뱅식으로 과감하게 규제를 풀고 경쟁을 도입해야 하는 등 금ㆍ산 문제에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금산 융합에 따른 경제력 집중 등 폐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전 규제 완화와 및 사후규제 강화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경제가 성숙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 등 힘있는 국가들은 유태인자본, 화교자본을 잘 키워서 이득을 챙기려고 하는데 우리는 애써 키운 산업자본을 범 한류자본으로 육성하기는커녕 서자취급을 하고 있다”며 “지나친 명분론으로 실리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 금융자본·산업자본 분리 외국은 어떻게

국내에서는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금ㆍ산(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를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난해 세계은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규제 현황’에 따르면 21개국에서 금융 및 산업 자본간 지분 교차 소유를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일수록 금산분리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였고, 한국만큼 철저한 금ㆍ산 분리를 고집하는 나라도 없었다. 미국의 은행업이 유일했는데, 미국조차도 보험ㆍ증권 등 제2금융권에 대해서는 산업자본의 소유제한이 없거나 투자 제한이 느슨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대부분의 유럽연합(EU) 국가들의 경우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100% 소유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부분의 나라가 산업자본이 10%까지 자유롭게 은행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초과하는 경우 금융감독 당국의 적격성 심사를 통해 이를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은행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자본의 수가 80곳에 달하고, 독일도 20개에 이른다.

일본도 산업자본의 은행 진출에 대한 소유 규제는 없다. 다만 금융감독 당국의 사전 허가나 승인을 조건으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가능케 하고 있다. 이 경우 경쟁법상의 독점 관련 규제도 받고 있다.

일본은 다수의 기업들이 과거 재벌 같은 ‘기업집단’에 속해 있으며 같은 집단 소속 기업 간에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주식을 상호 보유하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원천적으로 금융기관을 포함한 일본내 회사 발행주식의 5%(보험회사는 10%)를 초과해 소유할 수 없으나, 계열 집단 내 기업들이 상호 주식을 보유하므로, 계열기업 전체로는 지배력 행사가 가능한 정도의 충분한 지분(20% 이상)을 가질 수 있다.

OECD국가 중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를 일정비율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한국 등 7개국뿐이다. 미국은 은행지주회사법에 따라 원칙적으로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대출은행(ILC)을 통한 금융-산업간 결합은 가능하다. ILC는 ▦요구불예금을 수취하지 않거나 ▦총자산이 1억 달러 미만인 조건 등을 충족할 경우 소비자 및 기업 대출, 신용카드 업무 등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다.

이 같은 유연한 조건 덕분에 GE는 미국에서 비은행 금융기관인 GE캐피털을 자회사로 두고, 예금수취 및 증권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업무를 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 해외에서는 직접 은행도 보유하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 관계자는 “GE의 전체 매출 중 금융업 비중이 44.2%(2002년 기준)로 삼성그룹의 경우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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