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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5대 규제를 깨라] <4> 미흡한 적대적 인수합병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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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5대 규제를 깨라] <4> 미흡한 적대적 인수합병 대책

입력
2007.05.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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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인수ㆍ합병(M&A)이 빈번하게 일어나 경험도 많고 경영권 방어책도 잘 정비돼 있다. 반면 우리는 적대적 M&A를 경험한 일이 드물어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다. M&A에 대한 방어책도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

“적대적 M&A에 대비하기 위해 우호세력 확보에 힘을 기울이고 자사주 매입도 확대하고 있지만 기관투자가의 경우 더 나은 수익률만 보장되면 언제든지 반대편에 설 수 있어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A기업 재무최고책임자)

“한국은 기업들의 주가가 저평가 돼 있을 뿐 아니라 적대적 M&A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거의 없어 사실상 국제 기업 사냥꾼들에겐 놀이터나 마찬가지이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파트너)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감히 혁파해야 하지만, 단기차익을 노린 외국 투기자본 등의 경영권 공략 등에 대해선 적절한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주력기업들 상당수가 사내유보금 등 가용재원을 연구ㆍ개발(R&D) 및 시설 투자 등에 사용하는 대신 자사주 매입 등 경영권 방어에 소진하고 있는 실정이다.경영권 방어에 급급하다보니, 투자 위축으로 향후 성장잠재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게 재계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사실 철강 전자 정보기술(IT) 등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기업들의 경우 대주주의 지분이 얼마되지 않아 외국 투기자본이나 경쟁기업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P사 L모 회장은 지난해부터 외국 경쟁기업의 경영권 공략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최근 밤잠을 설치며 경영권 방어대책으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피땀 흘려 키운 한국의 간판 제조업체들 상당수가 적대적 인수합병 위험에 노출돼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KOSPI 200대 기업 중 50.3%가 ‘적대적 M&A 위협에 방비하고 있지 못하다’고 답했다. 이는 현행 상법상 포이즌필(독약조항)이나 차등의결권제 등 선진국 기업이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경영권 방어 장치의 도입이 원천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S&P 500대 기업의 대다수(93.6%)가 포이즌필을 비롯한 다양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해 놓고 있고, 유럽도 스웨덴(55.0%), 핀란드(36.0%) 등 상당수의 기업들이 차등의결권제를 활용하고 있다.

KOSPI 200대 기업의 26.9%는 잠재적으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거나 경영권 분쟁의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재계는 철강, 전력 등 에너지, 방위산업, 항만 등 기간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선 이른바 ‘한국판 엑슨 플로리오법’(Exon-Florio Act)에 관한 첫 공청회도 개최됐다.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과 이상경 열린우리당 의원은 각각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투자 규제법’과 ‘국가안보에 반하는 외국인투자규제법’이라는 이름의 의원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80년대 중반 액슨-플로리오법을 만들어 주요 산업을 적대적 M&A로부터 보호하기 시작했다. 일본도 지난해 신회사법을 통해 M&A 방어책을 재정비했다. 세계 각국은 국가 기간 산업과 연관된 주요 기업이 외국에 넘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반면 우리는 외환 위기를 겪으며 외국인 투자가 국가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이를 저해할 수 있는 M&A 방어 조항을 모두 없앤 실정이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M&A 방어에 매우 취약하게 된 것.

정부의 입장은 경영권 방어대책 마련에 다소 부정적이다. 산업자원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할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때에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M&A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외국인투자 자유화와 개방 경제의 큰 흐름과 배치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재계는 경영권 방어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전무는 “국가 기간 기업 등 외국인의 경영권 취득이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대비한 합리적 수준의 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어긋나지 않는다”며 “외환위기 당시 지나치게 완화했던 M&A 관련 규정을 이젠 좀 더 세밀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한국이 더 이상 국제 기업사냥꾼들에게 농락당하거나 국부가 유출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재계는 강조하고 있다.

■용어설명

▲엑슨-플로리오법:1988년 당시 엑슨 상원의원과 플로리오 하원의원의 발의로 제정된 법. 외국인 투자가 미국의 국가 안보?중대한 위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에게 M&A를 허용하지 않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신주예약권:신주를 발행해 신탁 등의 방식으로 관리하다 일정 요건 충족 시엔 신주예약권을 자동적으로 행사, 경영권을 보호하는 권리.

▲차등의결권:대주주 또는 장기주식 보유자 등에게 1주에 수십배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

▲황금주:1주만으로도 주요 경영상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준 특별주식.

▲포이즌필(독약조항):M&A로 인한 경영권 교체시 경영진들에게 천문학적인 보상을 주도록 함으로써 M&A 비용을 높이는 제도를 말한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 선진국의 경영권 방어관련 법규는

선진국의 M&A 및 경영권 방어 관련 법규들은 어떻게 돼 있을까.

미국은 연방법 차원에서 엑슨-플로리오법과 통신법을 통해 규제한 뒤 각 주마다 추가로 다양한 주법을 통해서 외국인의 손에 국가 핵심 기업들이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엑슨-플로리오법은 업종이나 산업을 구분하지 않고 외국인 M&A를 광범위하게 규제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 국방부나 안보 관련 제품공급 업체, 수출 및 기술이전이 금지된 제품을 보유한 업체 뿐 아니라 최근에는 통신 전자 에너지 등 기간 사업들로 적용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미국 기업을 M&A 하려는 외국인은 먼저 미 재무부 산하의 대미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에 통지해야 하며 CFIUS는 이를 검토, 승인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된다.

물론 엑슨-플로리오법에 따라 M&A가 금지된 사례는 많지 않다. 그러나 CFIUS가 조사에 착수하게 되면 인수자가 자발적으로 거래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인수가 허용되더라도 CFIUS의 권고 내용을 받아들이는 조건이 붙게 된다. 실제로 2003년 홍콩 HPH사가 미국 내 광섬유망의 소유권을 가진 미 글로벌크로싱사를 인수하려 했을 때는 CFIUS의 조사 착수만으로도 M&A 시도가 물거품이 됐다.

CIFUS가 광섬유망이 중국 정부와 연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큰 HPH사에 넘어갈 경우 미국 정부가 해외에서 도청이 되거나 군사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자 HPH사가 아예 인수를 포기한 것. 2005년 중국해양석유공사(CNOOC)가 미 석유회사인 유노칼(Unocal)사를 인수하려 했을 때도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될 수 있다며 보류 결정을 내려 결국 M&A 시도가 무산됐다.

영국도 산업법에 의해 국익에 반하는 ‘중요한 제조업’에 대해 외국인 인수를 규제하고 있다. 또 공정무역법에 따라 무역산업부장관이 외국자본이 공공이익에 반할 경우 투자를 막거나 철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는 화폐재정법에 의거, 국가안보 공공질서 보건에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투자에 대해 사전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승인 없는 투자에 대해선 사후적 규제도 할 수 있다. 1992~96년 정식 승인 없이 이뤄진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 9차례나 투자를 철회토록 한 바 있다.

캐나다도 외국인투자심사법에 따라 외국인의 대규모 기업인수는 사전 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또 개별법에서도 특정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투자촉진법을 통해 국가안보나 공공질서의 유지를 위해 방위 산업체를 지정하고, 외국인 투자는 산업자원부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령으로 미리 규제 업종과 제한 내용을 정하도록 함으로써 운신의 폭이 좁다. 증권거래법에서도 공공적 법인에 대한 외국인 지분 취득을 발행주식 총수의 40%로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전력만이 대상 법인으로 지정돼 있어 사실상 활용이 제한적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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