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객들이 미술품 투자 이벤트가 없냐고 난리입니다.” 신한은행 본점 PB고객부에 최근 전국 PB센터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열풍을 넘어 ‘광풍(狂風)’으로까지 번져가는 미술품에 대한 거액 자산가들의 관심을 충족시킬 이벤트를 서둘러 마련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PB고객부가 부랴부랴 마련한 이벤트는 ‘노블리제 미술 세미나’. 프라이빗뱅킹(PB) 주요 고객을 초청해 세계적인 미술 작품과 국내 유망 작가 작품을 보여주고, 미술품 시장 전망과 투자 요령 등을 전문가가 설명하는 자리다. 세미나는 30일 분당PB센터를 시작으로 전국 PB센터를 순회하며 진행될 예정이다.
#2. 하나은행 PB들은 요즘 ‘그림 교육’을 받느라 여념이 없다. PB의 기본 소양 중에 미술이나 음악감상 등이 있긴 하지만, 최근 추세로 볼 때 ‘짧은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휴 업체인 예술품 전문 경매회사 K옥션의 김순응 사장을 정기적으로 초청해 미술품 투자, 감상, 경매 등에 대한 교육을 받는가 하면, 최근 은행측이 법인회원권을 구입한 R미술관을 찾아 미술품에 대한 식견을 높이고 최근 조류 등을 파악하고 있다.
거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은행 PB에도 미술품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일부 고객들만 관심을 보였던 이전과 달리 그림에 문외한인 고객조차 미술품을 기웃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이 대안 투자처로 각광 받으면서 각 은행들은 PB센터를 통해 경쟁적으로 ‘미술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주요 은행 PB센터는 갤러리로 급속히 변신하는 추세다. 국민은행 골드&와이즈 PB센터에는 각 점별로 10~20여점의 미술품이 전시돼있다. 가나아트센터와 협찬을 맺고 점당 수백 만원에서 비싸게는 수천 만원 짜리 그림을 전시해 고객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취지다.
3개월에 한번씩 전시 그림이 바뀌기 때문에 고객들은 굳이 전시관을 찾지 않아도 PB센터를 통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전시품을 직접 구매하는 고객도 종종 있다. 최근엔 한 고객이 방배PB센터에 전시된 한 작품을 370만원에 구입하기도 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미술 사랑’ 덕분에 본점만 1,000점 이상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하나은행은 PB센터는 물론 본ㆍ지점을 갤러리화하는 ‘아트 뱅크’를 지향하고 있다. 신한은행도 경향갤러리와 제휴를 맺고 각 PB센터마다 15~20점의 그림을 전시 중이다.
은행 PB센터가 주최하는 미술품 관련 세미나도 줄을 잇고 있다. 하나은행은 25일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영국 파인아트펀드 필립 호프만 사장을 초청해 세계 미술품 시장 조류에 관한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우리은행은 세계적인 경매업체 소더비가 준비중인 한국 프리뷰 행사에 고객을 초청하기로 했다.
은행들의 미술 마케팅 경쟁은 향후 본격적인 ‘아트 펀드’ 경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일부 은행과 증권사 등이 미술품 등에 투자하는 ‘아트 펀드’를 내놓긴 했지만, 규모도 작고 몇몇 기업만 투자할 수 있는 사모펀드 형태여서 일반인들의 참여는 쉽지 않았다.
하나은행 PB영업추진부 안선종 팀장은 “미술품 투자 시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만큼 이르면 올 하반기에 본격적인 아트 펀드를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PB 고객들을 대상으로 각종 미술품 관련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도 아트 펀드에 참여할 잠재 고객을 확보하는 차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투자수익 뿐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구입 미술품을 대여해 줌으로써 사용 가치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국민, 우리, 신한 등 주요 은행이나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사들도 ‘아트 펀드’ 의 실효성을 검토하며 출시 시기를 저울질하는 중이다.
그러나 최근의 미술품 열풍에 기댄 은행 등 금융사들의 마케팅 경쟁이 과열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신한은행 PB고객부 김은정 팀장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공부를 해야 투자 안목이 생기기 때문에 조금씩 투자금액을 늘려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미술품 직,간접 투자의 경우 단기 시세 차익을 기대하기 보다는 장기적 안목의 투자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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