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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사과밭 주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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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사과밭 주인에게

입력
2007.05.2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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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얼굴을 마주하고, 그들의 일과 행동을 묻고 따지는 사람이다. 그런 질문을 통해 기자는 숨겨진 사실이나 감춰진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물론, 이미 드러나 있지만 해독되지 않은 사실의 의미를 밝혀낸다. 대개의 경우 기자의 일은 무엇을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로 초점이 모아진다. 쓰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기자는 무슨 특권으로 질문을 하는가. 세상과 인간의 삶, 그리고 정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에 대해 진실을 말하도록 국민들로부터 질문하는 권리를 위임 받았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공공성이며, 입법 사법 행정에 더해 언론을 제 4부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 언론의 기능 부정한 '통제방안'

그런데 정부가 22일 발표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방안'은 사회제도로서의 언론의 기능과 위상을 부정하고 있다. 기자실을 줄이고 없애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기자들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겠다,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돌아선 것이다.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적기나 해라, 너희는 모이면 담합하고 죽치고 앉아서 왜곡 보도나 하는 것들 아니냐, 너희들 '통제되지 않은 권력'은 이 참에 꼭 달라져야 한다…. "선의로 하는 일"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달리, 이런 악의가 담겨 있다.

기자 출신인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의 논평이 적실하다. 그것은 "언론에 대한 노 대통령의 과도한 피해의식의 발로이자 언론에 대한 보복폭행"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02년 5월 "언론은 수만 평 사과밭에서 썩은 사과 하나 주워서 이 사과밭은 다 썩었다고 한다"고 연설한 바 있다.

유 대변인은 "썩은 사과를 찾는 것은 언론의 본래 기능"이라고 말해 주었다는데, 이번 조치로 언론의 사과밭 출입은 금지된 셈이다. 부연하면, 사과밭 주인은 이제 사과가 썩는 것을 모르게 됐다.

이 방안을 의결한 국무회의에서 반대나 이의 제기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지향한다던 '토론공화국'은 어디로 갔느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에게 그런 주문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누가 감히 목을 걸고 반대할 수 있을까. 현직에 있을 때 말하지 못하고 물러나온 뒤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노 대통령 같은 분과 대면해서 반대소신을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컸고 그래서 '내 언론'에 집착해온 사람이다. 후보 시절의 '노무현 브리핑', 당선자 시절 '인수위 브리핑'에 이어 '청와대 브리핑'을 만들었다. 이들 브리핑의 편집국장은 당연히 노 대통령이다.

언론을 선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안은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즐겨 이야기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 대통령의 마음에 관한 문제다.

노 대통령 취임 초기에 만났던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노 대통령이 왜 저러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를 알아달라는 것이다.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대우해 달라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해석했다.

● 썩는 사과 감시할 수 있게 해야

그런데 언론은 그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언론 쪽의 잘못도 있다. 노 대통령의 어법을 빌리면 까고 조질 것만 찾고, 실수하기만 기다렸다.

최근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늘 '비난'만 하는 대통령> 이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미국 언론은 그러지 않는데 우리 언론은 대통령의 말을 주관적으로 감정을 섞어 보도한다는 것이다. '말했다'고 하면 될 것을 '비난했다'고 하는 식인데, 무심코 그런다면 무지이고 알고도 그런다면 악의라는 것이다.

그 지적에 공감한다. 5공 당시 언론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말을 보도할 때 흔히 첫 문장부터 '강조했다'고 썼다. 지금은 그 반대인데 둘 다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언론에도 잘못이 있다 해도 언론통제는 의아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잘못된 일이다. 노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기를 권한다. 사과밭은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며 관리자나 다름없는 사과밭의 주인은 곧 바뀐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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